J언니가 스페인 순례길을 떠나기 전, 매일 아침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며 나는 제주살이를 예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귤밭 초입에 있는 아주 오래된 까만 지붕 초가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대문도 없고 어디까지가 마당인지 경계도 없는 남들은 절대 탐내지 않을, 과연 저기에 사람이 살기나 할까 의심이 들만한 그런 흙과 돌로 지어진 낡은 제주 전통 옛날집.
J언니는 이 까만 초가집을 보며 내게 말했다. "키라야, 저 초가집 엄청 좋아~ 생긴 건 허름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아늑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이야. 만약 나에게 이 동네에서 집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무조건 저 집에 살고 싶을 만큼 탐나는 집이야."
"그래? 저 초가집이 그렇게 좋아?"
겉으로 보이는 그 초가집은 좋게 말하면 오래된 제주 돌집, 나쁘게 얘기하면 누가 살 것 같지도 않은 아주 심하게 낡은 집.
그런데 이상하게 나도 저 집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초가집 안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면서 매일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혼자 중얼거렸다. '아, 나도 저 집에 살고 싶다. 나도 저 집에 살면 좋겠다. 저 집이 우리 집이면 좋겠다.' 라고.
J언니가 유럽 여행을 마치고 제주에 돌아올 때쯤, 나도 이제 진짜 제주에 한번 살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필요한 건 앞으로 머물 집이었다. 다행히 나는 주변 제주사람들을 통해 앞으로 머물 집을 쉽게 구할수 있었다. 지인 찬스로 집세 대신 그냥 전기세나 내고 살으라면서 말이다.
J언니가 유럽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사 갈 집에 도배도 하고 장판도 깔았다. 그렇게 이사 갈 날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까만 초가집에 살던 아주머니 부부가 이사를 간다고 한다. 위미에 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됐다면서 혹시 이 까만 초가집에 들어와 살 생각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저요, 저!!!" 이사 가기로 했던 그 집은 쿨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도배랑 장판을 새로 한게 아깝긴 했지만, 그걸 포기할 수 있을 만큼 내겐 이 초가집이 최우선이었다.
자신들은 새집으로 이사가서 초가집에서 쓰던 물건들이 새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세보다 더 비싼 금액을 부르는 게 아닌가? 밀땅 끝에 적정 금액을 지불하고, 가스레인지, 가스통,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등을 구입했다. 이불과 옷들만 육지 집에서 가져오고 따로 구입할 게 없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까만 초가집이 드디어 키라의 제주집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까만 초가집의 내부를 자세히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부가 어떤지도 모르고 덜컥 초가집에 살겠다고 한 것이다. 현관앞에서 대충 보기는 했지만, 부엌이나 욕실을 들여다 본적이 없었다.
까만 초가집 문을 열고, 안을 들어가본다. 문을 열자마자 북쪽창이 난 작은 거실이 있고, 거실 양옆에 방이 각각 있고, 안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벽에 가득한 곰팡이. 제주에서 곰팡이는 뭐, 필수지. 저건 지우면 되겠지.
그리고 부엌 맞은편 욕실을 본 순간, 앗, 뭔가 실수했다는 느낌이 왔다. 아, 이건 뭐지? 욕실 맞아? 어두침침한 까만 시멘트 벽과 바닥의 욕실이다. 심지어 페인트칠 조차 되지 않은 그런 욕실. 만약 그 전에 초가집의 욕실을 봤다면 나는 절대 이 집을 선택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이제 이 집에 살아야 한다.
일단 욕실 벽에 페인트와 타일 작업을 하기로 한다. 고마운 제주사람1이 친구네 창고에 남아있던 타일을 챙겨다 주셨다. 유튜브로 타일 붙이는 영상들을 미리 숙지하고, 철물점에서 압착시멘트랑 줄눈을 사왔다. 그렇게 욕실과 화장실에 타일을 붙였더니, 전혀 다른 깨끗한 욕실이 되었다. 주인 삼춘은 욕실을 보시더니, 너무 잘했다며 본인이 더 좋아한다. 남는 타일 있으면 나중에 옆집 할머니네 욕실 바닥도 붙여달라고 한다.
그렇게 욕실 타일을 붙이고 욕실벽에 하얀 페이트를 칠하고 나니, 이제야 진짜 '우리 집' 같았다. 매일 아침 그 앞을 지나치며 '저 집이 우리 집이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던 그 까만 초가집에, 내가 정말 살게 되었다.
살아보고 싶었던 집이 내 집이 되고, 심지어 차도 생겼다. 정말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비록 내부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덜컥 결정한 집이었지만,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후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토록 내가 원하던 집 앞마당에 코딱지만한 금잔디가 깔려있지 않은가?
그렇게 까만 지붕 초가집에서 진짜 나의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