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

제주 시골 밤이 처음인 당신에게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7년 전 이 시골마을엔 가게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둘씩 공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집 앞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더니, 다음엔 공방과 사진관, 카페가 생겼고, 마지막으로 책방이 생겼다.


육지에서 이주해온 이들과 이웃이 되었다.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고,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한해 마무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각자의 공간에 도울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이 동네는 '찐'으로 제주의 시골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관광객들은 잘 모른다. 특별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동네다. 심지어 제주사람들조차도 "신흥리가 어디야? 제주에 그런 동네가 있었어?" 하며 무시하는 동네다. 그러면 나는 "네,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어요~"


내가 사는 이 시골은 아침이면 새소리가 동네를 가득 채워서 동네 이름도 '생이마을'이다(생이는 제주어로 새를 뜻한다). 아침 일찍 다들 밭에 일하러 가서,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마을에 과연 사람이 살고 있긴 한 건가 싶고, 밤 9시면 텔레비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동네.


그렇게 조용한 이 마을에 온 육짓것들은 아쉽기만 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동네를 모른다는 것이. 이웃들과 만날 때마다 "우리 재미난 일 한번 해볼까?" 몇 년째 말만 해오다가 드디어 계획을 세웠다.


이 시골의 고요함을 깨는 게 아니라, 이 고요함을 함께 느끼게 해주자고. 우리만 알고 있는 동네의 매력을 알려보자고. 심심하고 무섭기만 할 것 같은 제주 시골의 밤을 활용해보자고 말이다.

이름하여, 제주 시골밤이 처음인 당신에게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


동네 이웃 셋이 모여 각자의 공간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도모했다. 작당모의는 다음과 같다.


돌창고 공방에서 한밤중에 시를 함께 읽고, 마음에 닿는 글귀를 공방 사장님이 캘리그라피로 써주는 <詩, 시한 밤>


한밤중에 귤밭 안 돌집 책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는 <酒, 책스런 밤>


귤창고 사진관에서 사진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映, 화로운 밤>


그렇게 우리는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을 시작했다.

KakaoTalk_20251121_211134265.jpg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 중 '시시한 밤'

돌창고 앞 가로등마저 숨을 죽이듯 고요한 제주의 가을밤, <詩, 시한 밤>에서는 함께 시집을 읽고 서로 좋아하는 구절들을 나눴다. 똑같은 시집인데 마음에 와닿는 '시'가 다르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와인도 한 잔씩 나눠 마셨다. 공방 사장님이 직접 캘리그라피로 써주신 싯구절을 하나씩 간직하기로 했다.

KakaoTalk_20251118_205018860.jpg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 중 '주책스런 밤'

<酒, 책스런 밤>에서는 귤밭 안 책방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각자 가져온 책을 읽었다. 주책스런밤은 '키라네 북캉스'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 대신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며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함께 읽어주기도 했다. 도시의 화려한 와인바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한밤중 귤밭 속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와인과 책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 중 '영화로운 밤'

<映, 화로운 밤>에서는 귤창고를 개조한 사진관에서 사진과 관련된 영화 '푸른노을'을 함께 봤다. 사진을 찍는 흰색 벽에 빔 프로젝트를 쏴서 정말 시골 영화관처럼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서 각자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를 이야기하며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물론 우리의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건 아니었지만 참석한 손님들은 너무 좋아했다. 여행 오셨다가 우연히 <映, 화로운 밤>에 참석한 손님은 시골 사진관에서 영화 보는 일이 처음이라며 좋아했다. 한밤중에 귤밭 안 책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일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 했다.


함께 시를 읽고, 와인을 마시고, 영화를 보는 일. 사실 이건 동네 이웃과 늘 하던 제주 시골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 귤밭을 배경 삼아 고기를 구워 먹고, 책방 앞 잔디밭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고, 밤이면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보고, 동네 산책을 했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


<신흥리 프로젝트, 밤밤밤>은 제주의 시골을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제주의 일상을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사람들과 나누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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