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마운 제주사람2의 귤밭 일을 도와주러 밭에 갔다. 그때, 고마운 제주사람2의 친구가 밭에 왔는데, 고마운 제주사람2의 친구(제주 토박이)는 낯선 여자가 밭에 있는 게 이상한 건지 누구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직도 육지에서 온 티가 나나 보다. 그리고 이 두 제주 아저씨는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왔다는 제주 텃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게 제주 사람들 텃세가 심해서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고마운 제주사람2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대학생때부터 서울에서 25년을 살았어. 서울에 사는 동안 나는 제주 사람이 아니라 서울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쓰며 그들의 문화에 맞춰 살았다. 육지 사람들도 제주에 와서 살기로 했으면 제주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노력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주 사투리도 배워보고, 제주 문화도 배우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제주 사투리 배우려고 노력이라도 해본 육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 중 내게 제주살이에 관해 물어보는 손님들이 꽤 많다. 그중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제주 텃세가 그렇게 심하다면서요. 살 만해요?' 라고 묻곤 한다. '제가 지금 제주살이 7년 차인데요. 아직 그런 거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면 다들 정말이냐며 놀란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마을이다. 어느 날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이사 왔어. 그런데 이 육지 사람이 자기 집 앞이라는 이유로 삐딱하게 차를 세워놓으면서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불편해졌어. 그러면 나라도 이 타지에서 온 사람이 참 싫을 것 같다.
언젠가 제주 친구들과 제주 서쪽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나름 유명한 카페에 갔는데 그 카페 건너편 도로에 'OO카페 손님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빨간색 글씨로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관광객 입장으로 그 팻말을 봤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이 동네 사람들 참 야박하네. 카페 손님 차 좀 세우는 게 뭐 어때서? 세우도록 내버려두지 뭐 이렇게까지 한담?" 하고 제주 현지 동네 사람들 흉을 봤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제주에 살고 있고 그래도 조금은 제주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니 이런 시선도 관점도 바뀌었다.
이제는 그런 팻말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저 카페 주인 동네 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구나. 카페 주인 인성이 의심스럽네." 제주에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제주 사람들이 처음엔 정말 친해지기 힘들지만 한번 친해지면 얼마나 정이 많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 하는 사람들인지 말이다. 동네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오히려 길을 내어줄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 집 앞인데 뭘? 여긴 내 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심보라면 제주살이가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텃세는 제주 사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육지 사람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닐까.
제주 현지인과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마을 행사에 다 참여하라는 말도 아니다. 제주에서는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 사는게 어디나 다 똑같을 거다. '키라는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나 봐요?' '혹시 동네에서 무슨 일을 맡아 하시는 건가요?' 라고 묻는데 나는 딱 내가 해야 할 기본 도리만 할 뿐이다.
우리 앞집 삼춘 얼굴 보면 인사하고, 육지에서 엄마가 보내준 음식이 있으면 앞집 삼춘네 맛보라고 가져다드리고, 앞집 삼춘네도 귤은 주변에서 많이 얻어먹을 테니 호박 줄게, 라며 호박을 놓고 간다.
언젠가 앞집 삼춘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갔었는데 나를 보고는 엄청 놀래시는 거다. 나는 바로 앞집에 사는 이웃이니까 당연히 장례식에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해서 간 건데 삼춘은 감동받으셨나 보더라. 나중에 앞집 삼춘은 나를 만날 때마다 주변 친구들에게 엄청 자랑을 하셨다. 얘가 우리 앞집 사는 육지 아인데, 우리 어멍 영장 났을 때 왔다고 말이다.
발리에 살 때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나는 그저 외국인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이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제주에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육지것이고 앞으로도 육지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쯤은 이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리 서운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잘 나눠 먹고, 잘 도와가며 그들과 함께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다. 제주에 살기로 했다면 그들의 문화를 알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바람이 통하는 사이로 살아간다면 제주 생활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지 않을까?
PS. 이 글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이니 다른 제주 이주민과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