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과일은 당연히 귤이다. 대부분 귤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귤을 가져다주신다. 심지어 묻지도 않는다. 집 현관 앞에 노란색 컨테이너째 귤을 놓고 가신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 앞에 귤이 놓여있다.
그래서인지 제주에 살면서 귤을 사먹어 본 적이 없다. 주변 이웃들 대부분이 귤농사 지으시는 분들이라 항상 귤철이 되면 귤을 가져다 주신다. 밖에서 아시는 분을 만나도 "키라, 집에 먹을 귤 있어? 없지?" 한 봉다리 정도가 아니라 노란 컨테이너로 가득 담아서 차에 실어주신다. 덕분에 나는 하우스귤, 한라봉, 천혜향부터 육지에서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유라조생, 청견, 댕유지, 뽕깡까지 온갖 귤을 다 먹어봤다.
제주 사는 육지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다. 제주에서 귤을 돈 주고 사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누군가 제주 산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귤을 사먹는다고 하면 '이 육지 사람은 가까이 지내는 제주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안타깝네.' 또는 '이 육지 사람 참 별로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 제주에 사는 육지 사람은 알 거다. 귤은 사먹는 과일이 아니라는 것. 그저 자연발생하는 과일이라고. ㅎㅎㅎ
책방에서 북토크를 하던 가을날, 우리 집 앞 도로는 책방 손님들이 주차해놓은 차로 길이 비좁았다. 나는 앞집 삼춘에게 가서 오늘 책방 행사가 있어서 도로에 차가 많다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앞집 삼춘은 창고에서 노란색 귤 한 컨테이너를 들고 나오시더니 책방 손님들과 함께 나눠 먹으라며 귤을 주시는 거다.
어떤 때는 육지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매생이를 들고 앞집 삼춘도 맛보라고 가져다드린다. 그러면 삼춘은 "주변에서 귤 많이 줘서 귤은 많이 먹으니까 나는 호박 줄게." 하며 커다란 늙은 호박을 안겨주신다.
제주 시골에서 이웃과 나누는 게 비단 귤만이 아니다. 여름이 되면 항상 물외가 넘쳐나고, 겨울이면 호박도 하나씩 주시고, 때로는 '키라, 무 하나 줄까? 배추 뽑아갈래?' 한다. 얼마 전에는 이웃분이 골드키위 파찌를 가득 주고 가셨다. 이건 마트에서 파는 키위와 차원이 다른 아주 맛있는 맛이다. 이쯤 되면 나는 나를 귤부자, 키위부자, 호박부자라고 부르곤 한다.
서울에 살았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밤에 우리 집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누군가 자꾸 불을 꺼버려서 경찰에 신고까지 했을 정도로 삭막하게 살았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불은 옆집 꼬마가 끈 거였다).
함께 나눠 먹는 삶이 일상이 되어 있는 곳. 어디 야채뿐이겠는가? 생각해보면 육지에서 나는 이 모든 걸 돈 주고 사먹었었다. 나눔이 없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삶은 달랐다. 소유하는 삶이 아닌 함께 나누며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귤부자가 되고, 호박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