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춘들이 사는 집에는 우영팟이라는 자신만의 텃밭이 집집마다 있다. 그곳에 자신들의 먹거리를 심고, 그걸로 반찬을 만든다. 일 년 내내. 우리 집 텃밭에도 일 년 내내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들이 계절별로 자란다. 상추, 쑥갓, 쪽파, 양파, 대파, 부추, 방풍나물, 당귀, 토란, 달래. 육지에 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마트에서 파는 제철 채소가 아닌 내 집 앞 텃밭에서 내가 기른 제철 채소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 우영팟은 두번째 부엌과 같은 곳이다.
제주에 살면서 제일 먼저 했던게 텃밭에 모종 심기였다. 나는 이상하게 오일장에서 모종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정말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걸 다 사온다. 상추, 깻잎은 기본이고, 애호박, 오이,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쑥갓, 등 심지어 셀러리, 바질, 고수까지. 정말 코딱지만 한 내 텃밭에 이것들을 다 심기엔 불가능한데도 이상하게 모종에 욕심을 부린다. 그렇게 나는 모종 부자가 된다.
주인 삼춘은 일주일에 서너 번 귤밭 일을 하러 오신다. 그러면 주인 삼춘과 나는 함께 점심을 먹거나 하는 날이 많았다. 그때 주인삼춘은 꼭 우영팟에서 뭔가를 뜯어와 밥상에 올린다. 71세 친구이자 텃밭 고수인 주인 삼춘.
어느 날 삼춘이 내 텃밭을 보시더니 한마디 하신다.
"누가 텃밭 한가운데 오이를 심었냐!!!"
오이는 넝쿨이 올라오니까 텃밭 가장자리에 심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텃밭 초보인 내가 그런 걸 알리가 있나? 나는 그냥 오일장에서 사온 모종을 있는 그대로 텃밭에 심었을 뿐이다. 결국 주인 삼춘이 모종의 위치를 다시 잡아주셨다. 역시 고수는 다르구나.
며칠 후, 아주 작은 새끼손가락만 한 애호박이 자랐다. 정말 귀여웠다. 우와, 애호박이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그런데 얼마 후 새끼 애호박이 톡 하고 떨어져버린 거다. 그런데 다른 새끼 애호박들도 자라는 가 싶더니만 톡톡 떨어져버리는 거다. 그래서 주인 삼춘에게 물어봤다. 이상하게 새끼 애호박들이 자라지 못하고 톡톡 떨어져버린다고. 그랬더니 주인 삼춘이 붓으로 꽃가루를 묻혀줘야 한다는 거다. 주인 삼춘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애호박이 자라더라. 신기했다. 역시 텃밭 고수!
4월 말이 다 되어가는데 주인 삼춘이 텃밭에 모종을 안 심으시는 거다.
"삼춘! 모종 안 심어요? 언제 심을 거예요? 지금 오일장에 모종 엄청 나왔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 더 따뜻해져야 해."
그때 알았다. 오일장에 모종이 보인다고 무조건 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역시 텃밭 고수는 뭔가 다르다.
그렇게 주인 삼춘이 하는 걸 따라하며 텃밭을 배워갔다. 배추 잎이 자라기 시작하면 배추를 끈으로 묶어줘야 배추속이 차오른다는 것도 배웠고, 무씨를 뿌려서 무 새싹이 나와서 잎이 커지면 솎아줘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솎은 어린 무잎은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주인 삼춘이랑 참외를 심은 적이 있다. 참외가 익기 전 초록색 아기 참외를 따다가 삼춘이랑 함께 참외 장아찌를 담갔다. 세상에, 참외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꽃이 피고 그 자리에 아주 작은 아기 오이나 아기 가지, 아기 고추가 달려있는 것만 봐도 신기하다. 땅은 정말 신기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식물들이 자랄 수 있게 하는 걸까? (생물학 전공자임에도 늘 땅은 신기하다)
"키라야, 땅은 거짓말 하지 않아."
주인 삼춘이 자주 하시던 말이다. 땅은 정말 거짓말하지 않더라.
텃밭 고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지혜다. 주인 삼춘도 처음엔 나처럼 초보였을 거다. 오이를 잘못 심어보고, 애호박이 떨어지는 걸 보며 당황했을 거다. 그렇게 땅과 함께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심으면서 지금의 고수가 되신 거다. 나는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텃밭 초보인 나는 오늘도 71세 친구 옆에서 하나씩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