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겨울에 빠질 수 없는 동백꽃. 그 빨간 동백꽃은 길게는 3월까지 피어있다. 평소 알고 지낸 동네 이웃 S가 내게 동백꽃 따기 알바를 추천했다. 본인이 해야 하는데 본인은 시간이 없어서 못할 것 같으니 대신 나보고 하라는 것이었다.
동백꽃 따기??? 동백꽃을 딴다고??? 동백씨앗은 주워서 동백 기름을 짜는 걸 알고 있었는데 동백꽃은 어디다 쓰는 거지? 알고 보니 동백꽃잎은 말려서 동백꽃차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거였다. OO기업에서 이 동백꽃잎을 수매해서 차 만드는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이웃 S는 내게 어떻게 동백꽃을 따고 동백꽃잎을 분리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하루 날을 잡았다. 동백꽃을 꽃봉오리째 손으로 톡 따면 된다. 그렇게 동백꽃을 톡톡 따서 노란 컨테이너 안에 모으기 시작. 보기에는 꽤 쉬워 보였는데 꽃이 쉽게 컨테이너를 채우지 못했다.
창고로 돌아와 이제 꽃잎 분리하기. 꽃속의 암술, 수술, 꽃받침을 분리해 꽃잎만 따로 모으면 끝. 이것도 꽤 쉬어 보이지만, 노노노! 꽃잎 분리하는 게 쉽지 않다. 손이 빨라야 하고, 아직은 노하우가 없어서 서툴기만 하다. 이때까지는 사실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동백꽃이 예쁘고, 꽃을 따는 게 즐겁고 신기한 여전히 나는 육지사람이다.
하지만 며칠 후, 나는 이웃 S 대신 동백꽃 따기 실전에 들어갔다. 이 동백꽃 따기는 혼자보다는 둘이서 짝을 지어 하면 더 낫다는 이웃의 조언으로 동생을 끌어들였다.
아침에 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자 우리는 차에 노란 컨테이너 4개, 바구니, 사다리를 챙겨서 동백꽃을 찾아 길을 나섰다. "동백꽃은 10시까지 따래. 그리고 집에 가서 동백꽃잎을 분리하고, 오후 5시까지 수매장에 가야 해" 이미 많은 이들이 동백꽃잎을 따갔는지 생각보다 꽃이 많지 않다. 여긴 안 되겠다. 이동하자. 다른 곳으로 가보자. 오전 10시, 집으로 고고고.
집 거실에서 동백꽃잎 분리 시작. 쉽지 않다. 밥 먹을 시간도 없다. 5시까지 꽃잎을 수매장으로 가져가야 하니 결국 컵라면으로 5분 흡입. 생각보다 꽃잎 분리하는 시간이 꽤 오래걸린다.
오후 5시 수매장에 갔더니 벌써 사람들이 동백꽃잎 수매 중이다. 헉, 저렇게나 많이 꽃을 땄다고? 어떤 이는 30kg, 또 어떤 이는 60kg. 우리??? 8kg. 아, 쥐구멍에도 숨고싶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저렇게나 많이 딴거지? 꽃도 안 보이고 없던데...
다음날 우리는 좀 더 전투모드로 돌입. 날이 밝아오기 전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뭐야? 이 시간에 벌써 꽃을 따고 있는 사람들. 이렇게 어두운데 꽃을 따고 있다고? 그리고 저 사람들은 팀으로 움직이는 거야? 1톤 트럭을 옆에 두고 네댓 명이서 팀으로 동백꽃을 따고 있었다. 아, 저 정도로 움직여야 꽃잎을 그렇게 많이 분리했던 거구나.
그날, 우리는 새벽부터 움직였다. 꽃을 따서 집에 와 꽃잎 분리 시작. 이틀 꽃을 땄다고 이제 노하우가 하나둘 생겨난다. 그리고 이 꽃잎 하나하나가 돈이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밥도 포기하고 컵라면만 먹고도 꽃잎을 분리하더라. 꽃을 너무 많이 따서 꽃잎을 채 다 분리도 못하고 오후 5시, 수매장으로 갔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저렇게 꽃잎을 많이 분리하다니.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 꽃잎을 저울 위에 올린다. 하하하. 15kg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하냐! 어제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는데 오늘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인 듯 좋단다.
그렇게 며칠 동백꽃 따기를 했다. 처음 8kg을 땄을때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 며칠 15kg을 올렸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말만 들으면 우아한 동백꽃 따기 알바 같다. 현실은 전투 모드였는데...... 하지만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멋진 일상의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