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의 매력 중 하나는 '이삭줍기'가 아닐까 한다. 이삭줍기?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그림이 떠오르는 그 이삭줍기 맞다. 무나 당근을 수확한 밭에 남겨진 파찌(비상품)를 줍는 일을 제주에서는 '이삭줍기'라고 한다. 사실 육지에 살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제주에서 처음 '이삭줍기' 하러 가는 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주로 무밭이 많아서 아는 무농사 짓는 농부가 있으면 못생겨서 버려진 무를 주으러 가곤 한다. 서귀포 대정에는 마늘이 주생산지라서 그곳에는 마늘 이삭줍기, 구좌에서는 당근 이삭줍기를 한다. 예전에는 버려진 파찌를 이삭줍듯 가져왔는데 요즘은 반드시 밭주인의 허락을 받고 가져가야한다.
어느 날, 고마운 제주사람2가 자신의 귤밭 옆 대파밭이 수확을 포기했다면서 와서 대파를 뽑아가라고 한다. 대파밭 주인이 뽑아가도 된다고 했다면서. 그렇게 갑자기 나는 고마운 제주사람1과 함께 대파밭에 이삭줍기 하러 갔다. 고마운 제주사람2는 여기저기 이야기를 해놨는지 벌써 아는 사람들이 와서 대파를 뽑고 있다.
"아저씨! 이 대파 멀쩡한데요! 이 좋은 대파를 왜 수확 포기 한 거예요???"
나는 고마운 제주사람2에게 물었다.
"비가 많이 와서 대파밭이 물에 잠겼었대. 그래서 수확을 포기했대."
비가 많이 오면 대파의 뿌리가 무르고 썩어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확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정말 아무 이상 없는, 정말 멀쩡하고 싱싱해 보이는 대파였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먹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수확을 포기한 대파밭을 보며 "아이고, 이걸 어째요." 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는 즐겁게 대파를 뽑았다. 대파를 뽑아 대파밭 한구석에 모여 앉아 대파를 다듬었다. 대파가 너무 많아서 우리는 각자의 또 다른 이웃들에게 나눔을 한다. 나도 주인 삼춘에게 대파를 가져다 드린다고 하니 대파김치를 만들거라 하신다.
그리고 대파를 한 포대 정도씩 어깨에 메고 대파밭에서 나오면서 우리는 또 대파 농부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참 간사하단 말이지...
대파를 뽑으면서 신이 났다가도, 문득 농부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많은 대파를 수확 포기해야 했던 농부. 그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얼른 뽑아가는 게 오히려 농부를 돕는 일일 수도 있다고, 고마운 제주사람1이 말했다.
그날 우리는 대파를 이웃들과 나눴고, 주인 삼춘은 대파김치를 만들어주셨다. 조금은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버려질 뻔한 농산물을 이웃과 나누는 이삭줍기는 제주 시골살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중하고 즐거운 삶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