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 안 책방을 열다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에서 삼춘들과 귤 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갈 때즘, 내게 고민의 시간이 왔다. 계속 제주에 살 것인가, 아니면 이제 서울로 돌아갈 것인가.


제주에 계속 살려면 경제적인 활동을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내가 사는 이곳은 주변이 온통 귤밭뿐이다. 마흔을 앞둔 여자에게 경제적 활동이라곤 귤 관련된 일 말고는 없어보였다. 귤을 따며 살아도 나쁘지 않겠지만 계속 귤만 따고 살기에는 난 아직 너무 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용하다는 점집에 점을 보러 갔다. 점을 봐주시는 분이 내게 그냥 제주에 사는 게 나을거라 했다. 서울로 돌아가봤자 다시 제주로 돌아올게 뻔하다면서. 그런데 내 생각도 같았다.


분명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돈을 벌어 다시 제주로 내려올 게 뻔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또 서울 가서 돈을 벌다 제주로 돌아오겠지. 그럴 바엔 제주에서 돈을 벌며 살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제주에 계속 머물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뭘 하며 살지? 고민에 빠졌다. 이런 문제는 누구와 상담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답답할 때면 난 책을 쌓아두고 읽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책 속에서 답을 구하고자 하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늘 그래왔듯 책읽기를 시작했다. 이참에 책 100권 읽기 도전!


집 근처에 있는 두 도서관 표선도서관과 제남도서관을 오가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뚱맞게 '동네책방'과 관련된 책을 한아름 안고 집에 왔다.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아,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작은 책방이 있으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장래희망 같은 게 있었다. 나이가 들면 음식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소심한 장래희망. 그런데 왜 음식과 관련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든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 텐데 나에게는 음식 관련된 소설이나 에세이, 음식영화 보는 게 나만의 힐링 방법이었다.


음식 관련된 책과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치유되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당연히 나만의 작은 식당이나 카페라 생각해왔었다. 그런 내가 동네책방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책방과 음식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쯤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돌아와 귤밭집에 살던 J언니가 갑자기 이사를 갔다. 언니의 강원도 땅이 팔리면서. J언니가 살던 귤밭 안 돌집은 덩그러니 빈집으로 남아있었다. 이 집에 살아봤던 나는 다시 이 50년도 넘은 낡은 제주 돌집으로 돌아올 거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보일러도 고장 났고, 수리를 하려면 돈이 꽤 들어가는 그런 집.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어느 날 오후, 귤을 따고 집에 돌아와서 집 주변 귤밭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그 빈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 집을 얻어서 뭔가를 해볼까? 뭘 하지? 음… 모르겠다.


일단 주인삼춘에게 물어보자. 다음날 귤 따러 가서 집주인 삼춘에게 귤밭집을 빌려달라고 했다. 뭐 할꺼냐고 묻는데 모르겠다며, 그냥 무작정 빌려달라고 떼를 썼다.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집주인 삼춘은 처음엔 시큰둥 하시더니 너무나 흔쾌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렇게 귤밭 속 빈 집은 내게로 왔다. 난 아직도 이 날을 잊을수가 없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아무런 계획도 정해진 일도 없는데 그냥 너무 기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난 여전히 동네책방 관련 책을 읽고 있었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 책방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 아니야, 무슨 책방이야? 난 음식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구! 하며 내적갈등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 관련된 일이 반드시 식당이나 카페 일 필요는 없잖아. 음식과 관련된 책방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음식책방’을 검색했다. 없다. 아직은. 그래? 그럼 내가 음식책방을 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이 귤밭 안 빈집에 책방을 하기로 했다.


책방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니 돌집 리모델링을 위해 목수가 필요했다. 요가하면서 알게된 이웃마을 언니에게 아는 목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하필 언니 휴대폰이 며칠전 물에 빠져 모든 연락처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오래된 돌집을 리모델링 하려한다니까 자신의 남자친구가 도와줄수 있을것 같다고 했다. 바로 다음날 만나 집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그 다음날 공사를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책방 공사를 하면서 이웃 마을 책방에 원데이 클래스를 참석했다가 이웃 마을 책방 사장님께 동네책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너무 좋아해주시는 거다. 그러면서 이웃 마을 책방 사장님은 동네책방에 책을 공급받을수 있도록 거래처를 알려주셨다. 그러고보니 책방을 한다는 나는 책을 어떻게 들여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쉐프인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발견한 귤로 만든 발사믹을 보고 아, 이 제품을 책방에서 팔면 좋겠다 생각해서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후배가 발사믹 사장님을 소개해줬다. 마치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하는 것처럼 필요한 게 생기면 바로바로 누군가가 나타나 해결해주고 있었다.


물론 책방 공사하는 과정에서 왜 문제가 없었겠는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내 성격때문에 공사대금을 처음에 한꺼번에 다 주면서 자재비에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당시의 나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아니었다.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마음 편히 지낼수 있는 곳이길 바랬으니까. 거의 사기와 같은 일이었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공사대금을 가지고 장난쳤던 그 목수의 행동이 안타깝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 12일, 나는 팔자에도 없던 귤밭 안 동네책방 사장이 되었다.


keyword
금, 토, 일 연재
이전 08화내 친구는 71세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