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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기 좋은 나라: 11주차

by 퇴근은없다

희망편

우리는 작년 이맘때 지어진 지 10년이 조금 넘은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유해시설 하나 없는 곳이며, 10분 거리에 커다란 국공립 어린이집이 2개나 있다. 이 동네를 아는 사람들은 "아기 키우기 너무 좋겠네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나와 아내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육아휴직 사용하기에도 어려움이 없고. 맞벌이인 만큼 아이 하나 키우는데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정부 출산 지원 정책이 올해부터 늘어나면서 조금 더 여유도 생겼다. 아내 나이도 아기 낳기 딱 좋은 30살. 우리가 아기 안 낳으면 누가 낳겠는가.


현실편

나름 벌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유아휴직을 하면 당장 소득이 반토막이다. 아파트 대출금과 생활비.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소비가 더 늘어날 것을 생각하면 빠듯하다. 그동안 구매를 미뤄왔던 차도 아기가 태어나면 필수겠다 싶어서 구매를 결정했는데, 그럼 아파트 대출금은 언제 갚을 수 있을까...? 아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이런 걱정할 필요 없다. 아내가 육아휴직이 끝나면 다시 함께 돈을 벌텐데 무슨 문제겠는가. 아기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우린 일하면 된다.


연장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국공립 말고 근처에 없는 것 같다. 다행히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이 두 개나 있지만. 둘 다 대기가 400명, 500명이나 된다. 맞벌이라면 어린이집 대기 점수가 높다고 하는데, 맘카페를 살펴보니 맞벌이에 외동인 경우에도 언제 연락이 올 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 걸어둬도 2년 만에 연락이 왔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 어린이집도 경쟁률이 10:1 쯤 한다는데. 우리 아기는 복을 타고날 거니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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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등하원 도우미를 알아보면 된다. 어렵지 않게 믿을만한 분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아니면 돈 좀 더 보태서 늦게까지 봐줄 수 있고 등하원도 되는 영어 유치원이라도 알아보면 된다. 물론 영어 유치원이니 가격이 좀 부담이 된다. 200쯤 한다고 한다.


운 좋게 어린이 집에 보냈다고 끝이 아니다. 일단 아이가 아프면 등원이 안된다. 어른처럼 하루쯤 앓고 털고 일어나거나,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아프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아기는 꽤 자주 아프고, 한 번 아프면 낫는데 며칠은 필요하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플 때마다 휴가를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원도 문제다. 갑자기 회사에 불가피한 일이 생겨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하원은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가 하원시켜야 하는 날인데, 갑자기 퇴근이 늦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도 회사 생활을 하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겠지만... 보통 여기서부터 부부간 불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에겐 급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와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근처에 살고 계시면 좋다. 우리 부모님은 충청도에 계셔서 어렵고, 처가는 차로 20~30분 거리인데 도와달라고 부탁드리기 조금 부담스럽다. 오늘에서야 아기 키우기 좋은 환경은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가까이 사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가에 가까운 곳을 좀 더 고민해 볼걸 그랬나 싶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등하원도 도우미도 쓰면 해결일까? 어린이집을 12시간씩 보내고, 등하원도 다른 사람이 해주면 평일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저녁 먹으면 곧 자야 한다. 부모가 조금 늦게 퇴근하면 자는 모습 밖에 못 본다.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직장 다니듯 어린이집을 다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러운 일이 되어야 아이를 낳을 텐데. 이렇게 아기를 키우면 주변에서 '힘드시겠네요' 소리가 먼저 나온다.



조금만 버텨서 아이가 초등학생되면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초등학교는 더 일찍 끝난다.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으니 또 어쩔 수 없이 학원 보낼 생각을 해야 한다. 픽업이 되는 학원은 예체능밖에 없다고 하니 필수로 태권도는 시켜야 할 것 같다. 사교육을 시키고 싶어서 시키는 게 아니라 시킬 수밖에 없다.


아이 하나 키우기가 이렇게 어려워 보이는 데 다들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 희망편에서 얘기했듯 우리 부부는 상황이 매우 좋은 편이다. 혹시 내가 잘못 알아본 부분이 있고 지레 겁먹은 걸까, 실제로는 이렇게 어렵지 않은 건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래도 말이죠

아래는 내가 아기 갖기를 미뤄왔던 이유이자. 아이 낳기를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말들이다.


갑자기 휴가 쓰며 미안해하는 직장 동료

부부간에 생기는 전우애

결혼했다고 삶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아. 삶이 달라지는 것은 출산부터야

둘째부터는 진짜 실전이야


나에게 아이와 함께 하는 기쁨이나 행복감보다 먼저 와닿는 것은 옆에서 육아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으면서도, 아기가 생긴다는 일은 벌써부터 좋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좋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생각은 일단 접어두자)


아내와 나 둘만 있을 때와 다르게. 우리가 정말로 가족이 되는 것 같고. 아기를 만나는 일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그래서 앞으로 출산과 아기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다. 자고로 좋은 건 나누고 권해야 옳다.


다만 현실편은 알고서 선택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고,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또한 어려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출산은 선택할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 질투가 많아서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런지, 힘든 건 잘 얘기해도 좋은 건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출산까지 30주 남았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6년이 남았다. 눈 깜짝할 시간이다. 출산 장려 일기 한 번 꾸준히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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