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면허 12년 만에 운전을 합니다
면허를 따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다. 운전면허를 13년에 땄으니 올해로 장롱 면허 12년 차다. 집돌이 경력은 30년도 넘어서 애초에 어디를 잘 안 돌아다닌다. 혹시 외출할 일이 생기더라도, 쏘카로 차를 빌리고 운전은 아내가 한다. 옆에 타 있기만 하는 사람은 편하니, 내가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적이고도 편리한 생활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모든 생활이 달라진다고, 불가피하게 외출이 필요한 일이 많아진다. 필요한 편의시설이 다 집 근처에 있다면 괜찮겠으나, 못난 부모는 서울 역세권에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당장 산부인과에만 가려고 해도 걸어서는 갈 수 없다. 임신한 아내가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자신도 없다. 택시도 한두 번이지, 카시트도 없어 위험하고 비용도 비용이다. 만일 멀리 있는 어린이집이라도 보내야 한다면 혹은 밤늦게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한다면, 자차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나중에 필요할 때가 되어서 차를 사고, 연수받고 고생하기보다는 지금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장롱 면허 12년 차 집돌이가 차를 계약했다. 아빠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준비다. 이제 와서 운전을 시작하기가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임산부와 아기가 타는데 위험하게 사고가 나면 큰일이니 안전하게 연수도 받기로 했다. 차가 나오기 전까지 운전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니 브레이크에 발 놓는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 운전 별 것 없지 싶다가도 눈과 손과 발과 머리를 저렇게 동시에 쓰면서 말도 잘하는 사람들이 새삼스레 대단하다.
첫 차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전기차로 골랐다. 모델은 작년부터 봐두었던 EV3 롱레인지. 주말에 설명도 들을 겸 기아드라이빙 센터에 방문해서 영업 사원분과 함께 시승을 했는데, 이 분 차를 판매하고 싶으신 게 맞나 싶었다. 차를 판다고 오셨으면서 차량 제원도 잘 모르시고, 기능에 대해서도 잘못 설명해 주셨다.
삼촌뻘쯤 되는 분이셨는데, 이럴 거면 주말에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지 아까운 시간 내서 여긴 왜 오셨을까. 우린 '타운카'라고 개인 카셰어링 서비스에 등록하려고 했는데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잘 알아보지도 않으시고 '사기'인 것 같다며 만류하신다. 이분도 '누군가의 아버지겠지'하고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대화가 안 통하니 별 수 없다. 결국 다른 딜러분 통해서 계약하기로 했다.
우린 밖을 잘 안 다니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서 남는 시간에 차를 잘 활용하고 싶었다. 타운카에 차를 등록하면 렌터카처럼 내 차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다. 부업 삼아 대여료도 받을 수 있고, 개인 사업자로 차를 구매하면 부가세 환급등 혜택도 많다. 전기차 보조금에 타운카 세금 혜택까지 지원을 받으면 3000만 원 초반대의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내 차를 남한테 빌려주는 게 좀 꺼려지기도 하지만, 빌려주는 시간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서 욕심 안 부리면 조금 귀찮은 정도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내는 임신 13주 아직도 임신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초음파 보러 가지 않으면 입덧할 때나 임산부구나 싶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태동도 없고 배도 별로 커지지 않아서 정말 저 안에 아기가 자라고 있는 게 맞나 싶다. 그래도 나는 바쁘다. 아빠 된다고 운전도 배우고, 차도 계약하고. 앞으로도 준비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