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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달리는 법: 15주차

골병 들지 않아야 한다

by 퇴근은없다

우리는 결혼하고서 몇 년간 아이 계획을 미뤘다. '아직 아빠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사하고 생각해 보자' 등 아이를 갖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사실 지금 와서야 말이지만, 그 어떤 것도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부모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수십 개지만 부모가 되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하나니까. 그래도 그때는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이유였다.


아이를 갖지 않던 수많은 이유들 중에 하나는 아내의 '허리디스크'였다. 아내는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닌 데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연애 때부터 자주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심할 때는 백팩도 매기 힘들어서 백팩 대신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다니기도 했으니 여행 가는 기분 내기는 좋았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임산부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삭 때 5분이나 걸을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앉아있어서 골병이 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몇 년 전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가 연달아 찾아왔고. 그때부터 아내와 나의 가장 큰 목표는 허리디스크 치유하기였다. 허리디스크가 있는 젊은 사람들이라면, 병원을 찾기보다는 운동을 해야 한다. 우리도 병원 다닌다고 돈깨나 써봤지만 잠시 통증을 가리는 것뿐 그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한참 다니던 병원을 끊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매일 최소 30분은 산책을 했고, 많이 걷는 날은 몇 시간이고 걷기를 반년쯤. 서울 둘레길도 다니고, 주변에 산책할만한 길은 안 가본데없이 많이도 다녔다. 안 아픈 만큼 걸었고, 어느새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증이 없어지는 날이 정말 찾아왔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적 없던 아내는 어느새 30분 동안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PT도 하면서 운동에 퍽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함께 쟁취한 작은 성공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겨울이라 춥기도 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웠다. 이제는 임신 중기에 접어든다. 입덧도 가라앉고 날도 좋아졌다. 딱 달리기 좋은 날씨고, 다시 달려볼 때다. 물론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몸으로 예전처럼 달리지는 못한다. 무리해서 뛰기보다 걷다가 뛰기를 반복한다. 너무 숨이 가빠질 만큼 뛰지는 않는다. 하루 걸러 한번 달리는 것이 목표이긴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쉬어가기도 한다. 대신 그런 날은 가볍게 산책이라도 한다.


10개월은 몸을 망가뜨리기 충분히 긴 시간이다. 임신 중에 운동을 하면 태아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운동 없이 지낼 10개월 후가 걱정이다. 그동안 회복했던 체력과 몸이 리셋되고 다시 허리디스크로 고통받게 되면 어떡하나.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거칠 수는 없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임신보다 훨씬 힘들다는 육아가 시작될 텐데, 체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실전에 내던져지면 분명 몸도 마음도 골병들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육아로 인한 골병'의 대표적인 예가 손목 건초염이다. 3kg의 아이를 안고 재우고, 목욕시키고, 먹이다 보면 손목이 시큰시큰 아파온다고 한다. 아기는 빠른 속도로 무거워지는데 비실비실한 부모가 커가는 아기를 안아줄 수 없다. 그래서 러닝과 함께 '임산부를 위한 상, 하체 운동도 시작했다.' 지금은 아기 대신 1kg 아령을 들고 부실한 우리의 손목과 어깨를 튼튼히 하고 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1kg만 되어도 여기저기가 삐걱거린다. 아기가 크듯 아령도 키워서 출산 전에는 아기 몸무게 만큼은 들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가장 약자는 아기다. 어른과 달리 취약하고 조심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영양이 부족해서도 안되고 유해물질에 노출되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안 된다. 어른은 괜찮지만, 아기에게는 평생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아빠도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다 희생해 놓고, 나중에 너 키우다가 이렇게 골병들었다고 아기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걱정시키거나 미안해하지 않을 만큼 튼튼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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