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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야 딸이야? : 12주차

by 퇴근은없다

요즘 자주 듣는 질문 몇 가지가 있다.


"이제 몇 주 차에요?"


"출산 예정일이 언제예요?",


이런 질문들은 답하기 쉽다. 문제는 그다음 이어지는 질문.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나도 아직 모른다. 명확하게는 20주부터 알 수 있다지만, 태아의 생식기는 14주 차에 발달이 완료되기 때문에 이때부터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 이제 2주 남았다. 내가 아직 모르겠다고 답하면.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그럼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요새는 아들보다 딸의 인기가 확실히 좋다. 그 이유는 당신도 어렴풋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첫번째 아들은 무뚝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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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들이어 봤으니 알고 있다. 내가 무뚝뚝한 아들이었으니 나도 나 같은 아들 안 낳고 싶은 거다.

이왕이면 애교도 있고, 나중에 부모 외롭지 않게 여행이라도 같이 다니려면 딸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두번째, 아들은 키우는 난이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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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애들은 상대적으로 여자애들보다 에너지가 많은 편이다. 육체적으로 그 에너지를 발산하기에 좀 더 활동적인 놀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같이 놀아주려면 부모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다. 아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운동해서 체력 길러둬야 한다.


첫째가 딸인데도, 둘째가 아들이란 소식을 듣고 그날 하루 종일 침울했다는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딸을 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성별에 대한 편견과, 일부 사례를 과장해서 말하는 이 세상과, 그럼에도 유전자와 호르몬의 영향력, 나의 얄팍한 과학 지식 속에서 갈등하다가. 나는 아들로서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서 딸이 좋겠다고 세상에 순응했다. 나도 애교 많은 딸이 좋다.



하지만 꺼림칙한 것이 아직 하나 남았다. 그 옛날 우리 부모님이 갓 부모가 되었던 시절까지도 횡횡했던, 아들 바라는 세상이 그것이다. 아들을 낳고 싶어 첫째 딸 이름을 남자처럼 짓거나, 아들 낳을 때까지 계속되던 딸 부잣집되기 꼭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마음이 만들었던 비극들이다.


대를 잇고자 하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에 며느리들은 50%의 확률로 죄인이 되거나 혹은 인정받는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잘못인 듯. 아이들은 움츠러든다. 이제는 옛날일이 되어버려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마는, 누군가는 아직도 아들이 최고인 세상의 그림자에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딸 바라는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딸과 아들은 아주 다를 거고, 딸 키우는 삶을 기대하는 것도 사람의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또 있다. 아직 생식기도 제대로 없는 아기에게 미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을 바랐는데 딸이라면, 딸을 원했는데 아들이라면?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 아기라면 어떨까. 제대로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어줄 사람을 실망시켜 버리는 거다. 과학적으로 아직 아기는 듣지도 못하는 시기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과학으로만 흘러가지도 않는 것 같다.


특별히 바라는 성별은 없다. 벌써부터 자식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딸은 애교가 많아 좋고, 아들은 든든하고 집안이 활기차져서 좋겠지. 나와 아내 성격을 생각하면 아들도 얌전할 것 같고. 딸도 애교가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말자. 아들이라고 무뚝뚝하거나 딸이라고 애교 있지 않다.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애교 있는 아들이 되기도, 무뚝뚝한 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어떻게 바라든 이미 배아의 수정 단계에서 성별은 모두 결정되었다. 아기의 성별은 누가 간절히 바란다고 바뀌 거나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심심한 어른들이 호들갑에 아기가 별로 신경 안 썼으면 좋겠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들이건 딸이건 잘 키우면 됐지.


그래도 궁금해서 현기증 나는데요. 초음파 잘 보시는 분, 아들인지 딸인지 좀 알려주세요. 병원에서는 아직 안 가르쳐주고, 12주차에서 각도법으로 보면 된다는데 이거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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