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가 10주차가 되면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서 사람의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직 2등신이지만 둥근 머리가 있고, 짤막한 팔다리가 생겼다. 그래서 이때를 흔히 젤리곰 시기라고 한다. 이렇게 작은 생명체 때문에 입덧을 그렇게 힘들게 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크기보다는 중차대함을 고려하여 판단을 해야한다. 이 시기의 아기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손가락이 분리되고, 위, 장과 같은 소화기관이 발달하고 눈,코,입 과 얼굴 윤곽이 형성된다. 아무리 회사 일이 힘들다 얘기해봐야 아기가 하고 있는 일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이니 나는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일해야한다.
의사선생님이 이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칭찬해주셨다. 이런 말은 몇번 들어보지도 않았는데,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맞다.
"아까 움직였는데 얘가 긴장했나.."
초음파로 심장 소리를 듣는다. 저번보다 더 빠르다. 170이나 된다. 선생님은 움직이는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으시다며 저번보다 더 길게 초음파를 보시면서 뜸을 들이신다. 키는 이제 3cm나 된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이렇게 작은데 손가락까지 있어도 되나 싶지만 아기에겐 의문을 가질 틈이 없다. 키를 재고나니 무슨일이냐는듯 그 짧은 팔 다리로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움직이는 것일까. 팔다리를 꼼지락 꼼지락 대더니 손을 입가에 가져간다. 배가 고픈건가. 3cm 밖에 안되는 인간도 벌써 아기처럼 움직이다니, 대자연의 신비가 이런것 인가. 집에 돌아와서는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 편으로는 꼼지락 거림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 몇번이고 초음파 영상을 들여다본다.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정말로 사람이구나 싶었다. 부성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임신전에는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떼쓰고 울고 손 많이가는 귀찮은 존재. 가장 큰 단점은 말이 안 통한다는 점, 소통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건 비밀인데... 조카 조차도 말이 안 통할때는 별로 귀여워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그때는 아기에 대해 잘 몰랐단다) 이런 내가 아빠로써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기가 점차 사람의 형상을 해 나가고, 몸이 커갈 수록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부족함이 없이 더 해주고 싶고, 떼쓰고 울고 귀찮게 굴어줬으면 좋겠다. 아기에게 단점은 없다. 오히려 내가 아빠로써 부족한 점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