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이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난 듯하다. 아내 아직 헛구역질이 많기는 하지만 고기 제외하면 크게 가리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끼에 먹는 양도 이전에 먹는 양의 70% 정도는 문제없다. 아내는 이제 좀 살 것 같다며 칼국수니 김밥, 오므라이스, 탕수육 등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먹기 시작했다. 힘든 시기가 2달이 아니라 2주라서 다행이다. 정말 한 시름 놓았다.
이번 설날은 부모님 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아직 임신 초기이기도 하고 장거리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입덧이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매해 명절에는 꼬박꼬박 부모님을 뵈러 갔었기에 부모님이 아쉬워하실 것도 같았지만, 손주가 생기는 일인데 1년 정도는 아쉬우셔도 어쩔 수 없다. 전화로 올해는 입덧 때문에 못 뵈러 간다고 얘기드렸다. 덧붙여서 아내가 저번에 보내주셨던 찐빵을 잘 먹는다고. 그 가게 찐빵을 또 보내 달라고 가볍게 한 마디 드렸는데, 내가 조심성이 없었다.
평소 뭐든 해주고 싶어 하고, 손이 아주 큰 우리 엄마다.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면 이런 것 저런 것을 하도 과하게 챙겨줘서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냥 좀 두라고' 한 껏 짜증을 낸 후에야 멈추는. 그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다만 결혼 후에는 엄마의 사랑이 넘쳐버리는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방심을 하고 말았다. 찐빵 좀 보내달라고 전화했던 바로 그날 밤. 부모님이 충북 제천에서부터 찐빵을 사들고 오셨다.
차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도착 삼십 분 전에 가는 길이라고 연락을 받았다. 아기가 생겼다고 알려드렸을 때는 아주 담담하게 '그래 축하한다'라고 하셔서 내심 별로 안 기쁘신가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집에 쌓아두고 있던 찐빵과 설날 선물세트까지 한 보따리 안겨주시고는 얼굴만 보고 가시겠다고 하시는데, 내색은 안 하셨지만 손주가 생긴 것이 엄청 기대하고 기쁘셨나 보다.
이런 넘치는 사랑은 부담스럽다. 찐빵 좀 보내달라고 한 마디 했다고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얼굴 한 번 보자고 오시다니... 부모님은 우리 불편할까 정말로 찐빵만 건네주고, 10분 앉아 있다가 다시 제천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마음은 어떨까. 기쁘고, 뿌듯하고, 대견하고 그럴까.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봐야 알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미리 챙겨서 사랑이 넘치지 않도록 잘 단속을 해야겠지만, 나도 하루 이틀 아들 해 본 것이 아니라서 알고 있다. 이거 쉽게 막아질 수 없다. 대신 내가 잘해드려야지 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