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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커피 Oct 30. 2018

폼나지?

바리스타가 뭐예요?


바리스타가 뭐예요?




"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와 구분해서 주로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가리키며, 좋은 원두를 선택하고 커피 머신을 완벽하게 활용하여 
고객의 입맛에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커피의 선택과 어떤 커피 머신을 사용할 것인지, 어떻게 커피 머신의 성능을 유지시킬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며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고, 여러 종류의 커피가 각각 어떤 향과 맛이 나며, 어떤 특징이 있고, 무슨 빵과 잘 어울리는지 등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익혀야 하며, 아울러 손님에게 커피에 관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매일 커피를 시음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커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바리스타가 맞다.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완벽하게', '완벽한', '모든 것을'
'최대한의', '매일'과 같은 단어는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여 부담스럽다. 

저렇게 바리스타를 정의 해 놓으니 
무지하게 폼이 난다. 
매일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하는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바리스타와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카페가 연상된다. 
물론 그런 곳도 많겠지만 
하루 일과에서 위에서 언급한 
바리스타의 일을 수행하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그리 길지 않다.




바리스타는 뭐해요?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카페가 있다. 
가게마다 메뉴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고, 
업장의 형태도 다양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커피를 뽑고 
음료를 만드는 일은 
모든 바리스타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우리 가게는 소위 오피스 상권에 속한 가게로 
커피와 음료는 대부분 테이크아웃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주 고객들은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특정 시간에 손님이 몰려오기 때문에 
단시간에 내리는 커피의 양은  
웬만한 동네 카페와 비교한다면 
월등히 많을 것이다.



예정된 시간이 되면 
나는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간다.  
'자 이제 자판기가 되어볼까'
한 잔 한 잔 온 정성을 다하지는 못한다. 
내릴 때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매번 주문을 외우며 염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늘 해오는 그 패턴에 충실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주문서에 적힌 개별 주문들. 
이를테면 우유 많이, 개 뜨겁게, 
시나몬 왕창, 얼음 3개 
이런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자조적인 의미의 '자판기'였지만
연습하고 준비하고 마련된 것들을 
빠짐없이 실수 없이 일정하게 해낸다는 
생각을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날은 동료들과의 호흡도 잘 맞고 
동작의 막힘이 없이 그야말로 
기계적인 움직임이 딱딱 들어맞을 때면 
장거리 육상 선수들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가 이런 걸까 싶다. 
정신없이 음료를 만드는데
흔들림 없이 유연하게 한 시간 이상을 
움직이며 전혀 힘들지가 않다.)



한바탕 손님들을 보내고 나면 
눈치 없이 바쁠 때 배달된 택배를 정리하고 
개수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설거지 거리와  
일회용 컵을 분리수거한다. 
다 마셔 깨끗한 종이컵을 보며 
우리 커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기보다는
'정리하기 좋네'하는 생각이 앞선다. 
끝까지 다 마셔 가벼워진 컵이 반가운 것도 잠시 
컵 안에 이쑤시개나 냅킨, 꽁초가 
들어가 있는 경우엔 
이미  손님은 보이지도 않는데 
앉았던 자리라도 한번 째려본다.



'어떤 원두를 쓰나요'라는 질문보다는 
'화장실이 어디예요' , '와이파이 되나요?' 
'주차되나요'(주차 혜택이 있나요)와 같은 말을
더 많이 듣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미소를 띠며
 '맛있게 드세요'라 말하고 싶지만 
'아메리카노 시키신 부우우운!'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목소리가 갈라지는 일이 더 흔하다.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서 
'키위주스 한잔' 이런 식의 주문을 
수십 번 듣고 나면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하던 공손한 답변은
'메뉴판에 없으면 없어요'라며 
을 주제에 겁도 없이 
우리만 알아채게 성질을 부린다.


그냥 먹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타매장에서 들고 온 종이컵을 
버려달라 부탁하는 건 양반에 속한다.   
암말도 없이 몰려오더니 ,
갑자기 회의를 시작하는 무리들은
본인들이 싸온 간식 쓰레기를 늘어놓고 간다.    
(물론 즐거운 일상도 많지만 
글의 취지에 맞지 않음으로 생략한다)



어느덧 하루 해가 저물고 
가게를 닫을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녹초가 되곤 한다. 
커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전문성을 보여줄 틈이 오늘도 없었다. 

꼬질꼬질한 일상을 이어가는 내가  
하늘같이 모시는 손님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일상은 우리와 달리 
평화롭고 우아하고, 반짝이며 돋보일까
(그런 사람도  또한 있겠지만)
일일이 물어보거나 구경 가지 않아도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빤하지 않을까.


그냥 가을 사진


한도 초과로 결제가 안 될 때 
당황하지 않고 다음 카드를 꺼내는 
의연한 모습에서

'해장엔 뭐가 좋아요' 진지하게 묻는 얼굴에 
다크서클이 크레마처럼 흘러내릴 때 

모두들 비슷한 일상을 견디고 살고 있구나 싶었다.


낮에 그냥 놀고 싶다.


'이 일은 안 힘들죠? 스트레스도 없고'라 묻는 왕님께 '네. 손님만 안 오시면요' 할 뻔한 일이 
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미운 꼴이 오래 밉지 않다. 
우리는 어찌 보면 같은 처지니까


폰이 바꾸고 싶어서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우리 귀한 손님들을 생각하면 
(여태까지 흉봤으면서)
바리스타로써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한잔의 커피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잘하는 것은 오는 말이 비록 곱지 않아도 
안정적인 '솔'음으로 건네는 
2500원이 아깝지 않을 
단 몇 분간의 시간을 
제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요... 손님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박주스는 끝났어요.

11월 이거든요.



written by 취향의문제, 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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