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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Nov 15. 2023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겁니다.

2023년도 수능날


희한한 꿈을 꾸었다. 뜬금없이 학부 졸업을 못 마치고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자취방을 구하러 다녀오는 꿈이었다. 악몽도 이렇게 끔찍한 것은 없다. 다시 학교를 다니는 꿈이라니.


학사를 마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지금 하는 일도 전공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 까맣게 잊고 산다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내 클라우드는 가끔 'N 년 전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한 조각을 보여준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왜 이리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청춘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니 생긴 불안이었으리라. 조금씩 세상을 두드리면서 나를 알아갔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시도해보려고 했고, 남들과 나를 저울에 재보며 비교하기도 했다. 객기를 부려 과하게 열심히 살았다. 


사람들은 천사를 본 적이 있을까? 나는 늘 천사의 모습으로  중절모를 쓰고 포근한 니트를 입었던 어느 노신사를 떠올렸다. 아직도 생각나는데 그는 신이거나, 천사였다.


광주 지하철에서 울상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경로석에 앉아 계셨던 신사 분이 오셔서 말씀을 걸어주셨다. 옆에 앉아 여러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는 먼 허공을 보며, "학생은 잘하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따뜻했던 그의 말 한마디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내 불안감을 치유해 줬던 사람은 전혀 안면이 없던 그 노신사였다.


기어코 수능철이 돌아왔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 '수능'이란 얼마나 중요한 관문이었던가. 불안감은 결국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다운 조언을 해 주기를 바란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거라고.  


졸업준비위원장하며 도록에 담았던 글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플라톤의 향연
인사동 토포하우스, 졸업전시
내 졸업작품 중 하나.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 구절, "태산은 한 줌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의 구절로 유명하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아빠 같았던 지도교수님. 전주에서 익산까지 식을까 봐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해 안고 온 '용산다리 족발'
난로에 피자 데워먹으면서 전공실에서 밤을 지새우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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