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준비하는 마음
예전에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일이 잦았다. 실내에서, 골목길에서 혹은 강의실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노래를 했는데 대체로 우발적인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악기를 휴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 다채로운 무반주 가창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가창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아름다운 목소리나 정확한 박자가 아니라, 첫 음이었다. 너무 높게 잡아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낮아도 곤란하다. 적절히 내 분수에 맞는 첫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마치 그와의 운명을 좌우하는 첫 인상이나 방금 시작한 온라인 이벤트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첫 댓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how.about.breakfast 계정의 기획은 뭔가 잘못됐음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조식을 먹고 출근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날마다’ 그것도 ‘어제와 다른’ 조식을 심지어 만. 들. 어. 먹는 계정이라니. 이건 남자키로 불러야 할 노래를 여자키로 시작한 셈이다. 물론 한편으론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 들. 어. 먹는, 3단 콤보 정도의 노력은 보여야 이왕 공들여서 운영하는 계정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까(라 쓰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읽는다) 라고 생각한 탓도 있다.
계정의 진정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어제와 다른 조식 메뉴를 구상한다지만 일주일치 조식을 미리 준비할 정도로 피곤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틈틈이 다음 날의 조식으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보고 관련된 사항들을 찾아보고 냉장고와 팬트리에 남은 식재료를 따져본다. 직장에서 몇 시간에 걸친 기나 긴 끝장 회의를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동료들과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퇴근길에 들른 마트에 올해 처음으로 등장한 과일을 보면서, 내일 아침에 뭘 해 먹을지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방법론이 있다.
계정 운영을 시작했을 무렵엔 딱히 방법론이라고 할 만 것이 없었다. 요리책을 몇 권 사서 거기에 수록된 제법 조식스러운 메뉴들을 따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요리책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되자 빵, 밥, 면과 같은 주식 메뉴와 계란이나 고기, 해산물처럼 조식에 최적화된 동물성 단백질 메뉴 그리고 샐러드나 과일, 요거트 같은 가벼운 메뉴를 돌려 막기(먹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한국식, 일본식, 태국식, 이탈리아식처럼 국가별 음식 메뉴 기획도 더해졌다. 가령, 한국 메밀면, 일본 소면, 태국 당면, 이탈리아 파스타 처럼 말이다.
주식(실은 탄수화물식), 단백질식, 기타 가벼운 조식에 국가별 음식 메뉴가 접목된 기획은 마치 도서관의 십진분류법을 떠올리게 만든다. 텍소노미(Taxonomy)다. 여기에 더해 #바쁜아침 #15분완성 #다이어트식 #노설거지 #원팬 처럼 이용자들이 남긴 이른바 폭소노미(Folksonomy)식 태그를 참고한 적도 있고, ‘정말 간단한…’, ‘해외에서 난리 난…’ 심지어 ‘당신만 모르는…’처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어그로 가득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메뉴 기획도 있었다. 그리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배민 3년이면 맛집 평론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날마다 어제와 다른 메뉴 기획은 마치 전자가 특정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준위로 순간적으로 도약하듯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차원의 도약을 경험하게 된다.
식재료 A, B, C를 사용해서 오늘의 조식을 만든 후 C재료가 남으면 내일의 조식은 C재료를 중심으로 D, E를 더해 준비한다. 모레의 조식은 C, D, E 가운데 적절한 식재료를 활용해서 만든다. 정말 실용적이고도 생산적인 메뉴 기획 아닌가? 그래서 어제와 같은 조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기대감으로 나를 고양시키고, 더 나아가 일상에 재미와 기대를 더하는 행위인 동시에 무엇보다 식재료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어제와 다른’ 조식을 위한 기획이자 아이디어 발상법. 나는 이것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조식 기획 방법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위대한 발견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내게 동료 M이 코를 힝 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모든 주부가 다 그렇게 해”
토마토만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조식 기획 방법론에 유용한 식재료가 있을까? 토마토 파스타, 토마토 토스트, 토마토 에그누들, 토마토 솥밥, 토마토 샐러드... 무궁무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이다.
토마토를 끓는 물에 데치고 껍질을 벗겨서 사용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그냥 갈고 감칠맛을 내줄 다시마물 대신에 국수장국을 넣었다. 덕분에 예전에 만든 #토마토냉국수 보다 훨씬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약 463kcal #토마토소면
재료
소면 1인분, 올리브오일, (국물) 토마토 2개, 다진 마늘 1t, 국수장국 3t, 간장 1t, 미림 1t, 레몬주스 1t, 매실액 1t, 소금 한 꼬집
조리
1.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은 뒤 구멍이 큰 그레이터에 간다. (감자 채칼 정도면 적당하다.) 여기까지는 어제 조식, Pan con tomate와 같다. 다진 마늘 1t, 국수장국 2t, 간장 1t, 미림 1t, 레몬주스 1t, 매실액 1t 넣어 국물을 만든다. 소금 한 꼬집 넣는다.
2. 끓는 물에 소금 넣고 소면 삶는다.
3. 그릇에 소면 담고 국물 붓고 세발나물 조금 얹는다. 올리브오일 한 바퀴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