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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꼭 먹어

조식을 준비하는 마음

by 나조식

나, 직장인 나조식씨는 2020년 7월 13일 이후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오늘까지,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는다’ 들장미 소녀 캔디스럽게 외로워도 슬퍼도 꼭 먹는다. 그리고 레시피와 사진을 몇 장 덧붙여서, 아, 가끔은 조식에 얽힌 그날의 감상도 조금 더해서 how.about.breakfast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다. 햇수로는 5년, 개월 수로는 60개월, 일수로는 1826일째다. 이 책에는 그동안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생각했던 것들, 가령,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은 어떻게 생각해 내는지,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먹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how.about.breakfast 해례본(解例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 말에는 우선 ‘별일이 없으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 별일이란 조식을 거를 정도로 많이 아프거나 출장, 여행 등으로 주방을 비울 수밖에 없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소소하게는 1년에 한 번 정도 건강 검진하는 날 금식으로 조식을 거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조식을 거를 정도로 아프다면, 적어도 후각과 미각을 잃을 만큼 심각한 상황 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코로나19에 걸려 미각과 후각을 잃는 상황말이다. 매일 아침 조식을 즐기는 '프로 조식러'가 미각과 후각을 잃어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건 중대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건 남해산 생멸치 1kg로 엔초비를 담가도 전혀 비린내를 느낄 수 없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행 중이라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지는 대체로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낯선 여행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온갖 식재료가 전해주는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여행지의 낯선 주방에서 조식을 만든다는 건 마치 롤드컵 대회 결승전에 피씨를 사면 끼워주는 번들 키보드와 마우스를 들고 경기에 임하는 것 같은 생경함만이 가득하다. 장황하게 조식을 거를 수밖에 없는 ‘별일’에 대해서 설명했으나 요약하면, 먹기 싫어서, 만들기 싫어서 조식을 거르는 경우는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날마다’ 조식을 만들어 먹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없고 조식을 둘러싼 주변의 유혹이 만만치 않다. 우선 직장인들에게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이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속 밀러 행성에 불시착한 주인공 일행의 상황과 비슷하다. 밀러 행성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에 맞먹는다.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에게 출근 전 아침 시간은 마치 주인공 일행이 밀러 행성의 보낸 시간처럼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쪼개서 ‘날마다’ 조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는 ‘만물은 움직이고 있어서 모든 것은 머물러 있지 않고 그래서 사람도 두 번 다시 같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따지고 보면 조식도 마찬가지다. 같은 곳에서 산 가지와 표고버섯을 사용한, 같은 레시피로 만든 똑같아 보이는 조식이라도 따지고 보면 같은 조식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어제와 다른 조식’을 관통하는 정신 같은 것이다. 실제로 ‘어제와 다른 조식’의 의미는 같은 식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조리 방법을 달리하고 좀 더 새롭게 플레이팅 한 ‘처음 만들어 본 조식’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 만들어 본 조식’에는 늘 어려움이 뒤따른다. 조식의 맛도 플레이팅도 마음에 쏙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싱거워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한층 더 갈아 넣어 간을 더해야 하는 날도 있고 폭탄 계란찜이 생각처럼 폭발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김 빠진 계란찜 앞에 절망하는 날도 있다. 하룻밤을 물에 불려 블렌더에 간 병아리콩 후무스의 텍스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 역시 그 스벅에서 사용한다는 그 블렌더를 샀어야 해’라며 블렌더 탓을 할 때도 있고,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수플레 팬케이크는 열이 균일하게 전달되지 않는 이 놈의 팬이 문제라며 팬 탓으로 돌리고 열전도가 좀 더 뛰어나다는 팬을 찾아 쇼핑 검색창을 뒤적일 때도 있다. ‘어떤 때, 얼마만큼,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냉정과 열정사이(2001)의 문장처럼 ‘처음 만들어 본 조식’은 불의 세기를, 재료의 익힘 정도를 그리고 간을 어떤 때, 얼마만큼 더하고 빼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고 있기에 늘 어렵기만 하다.


가만히 따져 보니, 조식으로 무엇을 먹을지 어제와 다른 조식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생각해 보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 간의 조합도 따져보며 보내는 시간이 대충 30시간 이상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30분 정도 조식을 만들고, 3분 만에 먹은 다음, 출근길 30분 동안 포스팅한다. 놀라운 건 이렇게 시작했던 날마다 조식이 실제로 삶의 중요한 리추얼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만날 조식을 떠올리며 설렘에 몸부림치다가 깨어나 출근 시각을 목전에 두고 비록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지만 식재료를 칼로 자르고 불로 지지는 등의 주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치열한 과정을 거쳐 한 끼의 조식을 완성하고 찰나에 즐기는, 거룩하다 못해 짜릿하기 그지없는 리추얼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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