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Jul 10. 2021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

어떤 교사의 전보발령기


많은 것이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교사는 보통 5년을 주기로 학교를 이동하게 됩니다. 만 5년을 꽉 채우면 이른바 '전보발령'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희망청(서울 내 지역교육청)과 희망교를 쓰게 됩니다. 작년까지 근무하던 학교에서 아이들 낳아 키우며 5년 하고도 훌쩍 넘긴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전보 내신을 낼 때가 되었어요. 근무지와 거주지 사이에 거리도 있고 차도 너무 막히는 구간인데다, 새 교육청에서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이번에는 청간 전보를 내기 위해 관련 서류를 모두 작성해서 교감샘께 제출해둔 상태였습니다.


청간 전보를 쓰는 사람이라도 관내 학교 지망도 써서 내야 한다고 해서, 우리 청 관내에 어떤 학교가 있나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전입 가능 학교 리스트를 뽑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처음 보는 학교 이름이 있었는데, '신설'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더군요. 응? 여긴 어디지? 하고 찾아봤지만 지도에도 아직 표기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열심히 서치해본 결과, 이런 설계 조감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아니,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건축이 가능하다고? 네! 정말 가능했습니다!


전보 내신을 앞두고 '아름답고 깨끗한 건물에서 일해보고 싶어요'라는 기도를 자그마하게 드렸었는데(이전 근무교는 설립연도가 거의 제 나이와 비슷한, 아주 오래된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의 건축 설계와 관련한 사진들은 저에게 마치 크리스마스 종합선물세트처럼 "사실 오래 전부터 널 위해 준비했어!" 하고 큼직하게 던져주신 선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물론 학교가 절 위한 것일 리 있나요, 다만 그 순간 그런 느낌으로 쿵닥쿵닥 다가왔다는 것).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같은 학교 교감샘과도 면담해 보면서 이 학교로 내신 내는 것을 두고 기도하며 하룻밤 고민해 보았습니다. 만 하루 꼬박 고민하고 결국 전보 서류를 모두 갈아엎고 새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학교를 지망 A 학교로 쓰게 된 것이죠(예전엔 1, 2, 3.. 순위라는 지망이 있었는데, 이제 순위대로 발령내기 어렵다고 이런 내신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암암리에 A에 쓰는 걸 1지망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며 쓰지요).


일단 그렇게 신청하고 내신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얼마나 가고 싶어지던지요. 전보 발표가 나기까지 결과가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잠도 잘 못 잤지요. 그러다 심지어 이 학교에 발령나서 같이 발령난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하는 꿈까지 꿨습니다. 드디어 2월 3일, 전보 발표가 났어요. 전 같으면 교육청 홈페이지나 교감샘이 직접 문서수발 해오셔서 알려주시는데, 코로나 상황도 있고 해서 그런지 업무포털 내에서 직접 조회할 수 있도록 파일이 떴지요. 엑셀 파일을 열고 두구두구두구.. 내 이름을 찾아 내려가는데 아 그 떨리는 마음 이해 되시나요. 마치 임고 합격자 발표 보는 그런 기분으로 파일을 슥슥 스크롤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이름 옆에 근무중인 학교와 발령교 이름이 나란히 떠 있는 걸 보고, "됐다!" 하고 작은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사실 신설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업무량이 많아 보통은 기피하기 때문에 그래도 발령이 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저처럼 건물 보고 내신 내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그래서 여기 떨어지고 다른 곳으로 발령나지 않을까 그러면 그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꿈꿨던 것들은 심리적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마음이 오락가락 하던 날들이었지요. 그런 저에게 우리 학교가 끝끝내 선물처럼 와락 안겨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쓰면서 보니, '우리 학교'라는 말이 처음에 어색하면서도 설레던 3월 즈음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너무 익숙하게 쓰게 되었지만요. 이런 감정은 교직 생활하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어요)


저처럼 전입오는 교사들 말고도, 미리 작년부터 '개설 요원'으로 선정되어 개교를 준비해온 선생님들이 계셨어요(듣기로는 다른 신설에 비해 개설요원으로 신청한 선생님들이 많았고, 경쟁률이 꽤 높았다고 들었어요). 작년에 이 학교가 개교된다는 걸 알았다면 저도 개설요원으로 신청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신설학교에 2월에 발령받은 사람들이 모여 바로 개교하는 데 진통이 많아, 미리 개설요원 T/F가 만들어지고 교육청에서 컨설팅도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교직원 선생님들도 뭐랄까 '신설요원'쯤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종 규정을 만들고, 수업 체계를 세워나가고, 공간을 구성하며 학생들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니까요. 그러면서 새로운 학교 스토리를 함께 써나가고 있지요. (저는 도서관 T/F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올려볼게요. 1학기에는 설계 과정을 함께했는데 매우 흥미로웠답니다)


보통  학교로 발령을 받아도 관내에서 이동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라 학교 문화가 비슷비슷한  반해, 우리학교는 서울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고 배경도 다양해서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새로 배우게 되는 관점과 지식도 많아  또한 흥미진진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마치 20  하던 대학생활을 다시 하는 기분이기도 하달까요. 그래서 출근하는  싫지 않고(우리 학교에서  2등으로 출근 중입니다.. 7 되기도 전에 1등으로 출근하시는 B 부장님은 도저히 이길 수가 ), 언제 이렇게 여름방학이 다가왔나 싶고, 방학 때도 출근하고 싶고  선생님들 만나고 싶고 학생들 보고싶고  너무 나갔나요.


물론 새 학교에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갈등이나 진통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각자의 열심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기에,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신뢰하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모임도 사부작사부작 만들어보고 있는 것이고요. (앞으로의 모임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다가 Y샘은 에어비앤비 잡아서 워크샵도 하자, 우리 학교 텐트 치기 좋으니 아예 텐트를 치며 1박을 하자 등등의 의견을 내고 계심. 아이, 저는 생각만 해도 신나고요)


학생들과도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어쩌면 담임이 제일 신나 있을지도). 그렇다고 막 학생들이 동화 속 아이들처럼 유니콘 같냐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런 생각은 해보게 돼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이들도 어쩌면 그런 영향으로 아름답고 차분한 것들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을 거라고. 학생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최대한 만들고자 하는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도 관계의 즐거움을 누려보고 있을 거라고. 한편 제가 지금껏 근무했던 학교 중 선생님들이 연령대가 가장 젊고, 성별도 균등한 편이라 학교문화도 좀더 다채로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쓰다 보니 너무 장밋빛처럼 써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장생활의 고민이나 피로가 없느냐 하면 그럴 리는 없지요.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저도 비슷하게 하면서 삽니다. 관계, 능력, 현재와 미래에 관한 여러가지 상념들. 그럼에도 돌아봤을 때 감사한 것들이 훨씬 많아서, 그런 피곤함은 상쇄하고도 넉넉히 남는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학교에서 좋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도 놓치지 말아야겠지요. :)



지난 겨울, 아직은 황량했던 학교 바깥의 풍경. 그래도 마냥 좋았던.



봄이 시작되던 무렵의 학교. 가냘프지만 첫 봄꽃이 피기 시작했지요.



책상이 들어오기 전 빈 교실. 삼각 지붕을 교실 내에도 그대로 표현해 두었습니다. 난 참 좋은데,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려나요.



햇살에 노릇노릇 익고 있는 벽돌색이 좋아요. 손으로 가만히 쓸어보고 싶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벽입니다.

까만 출입문 프레임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학교 옥상에서 찍어보았어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안타깝게도 옥상정원은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내년에 바깥에 풀도 꽃도 많이 자라면 아이들과 더 많이 나가보아야겠어요.


참 좋아하는 학교 사진 중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이런 중정이 무려 19개가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너무 뜨거워 앉아 있기 어렵지만, 잠깐 앉아 한숨 돌리며 담소를 나누기에 정겨운 공간입니다. 지금은 선생님들이 학생들 더울까봐 커다란 파라솔도 설치해 두셨어요. 정성어린 손길에도 작은 감사를 느껴봅니다.



학교 이야기 종종 올려볼게요.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5년 후를 아쉬워하며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지, 미리 걱정까지 하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새 그 중 한 학기가 지나갔네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늘 상기하면서,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새로운 학교 건축 설계를 시도하고, 이러한 공모작을 선정한 교육청 관계자 분들, 그리고 시공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의 주인은 우리 학생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아울러, 제가 드렸던 작은 기도에 "그래 한번 잘해봐" 하면서 어깨를 다독이며 보내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잊지 않고, 비록 부족하지만 성실하게 이곳에서의 스토리를 써나가리라 가만히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부디 그 길 위에 혼자가 아닌 여럿이 어깨를 겯고 나란히 웃으며 걷고 있기를, 기도하고 바라 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