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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Sep 04. 2021

삼각지붕의 학교를 아시나요

어느 신설학교의 이야기



새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7개월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 길게만 느껴졌던 첫 3월을 지나, '이 학교에서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낯설었던 이들과 어색했던 시간도 이미 과거가 되어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지는, 관계도 마음도 가을처럼 여물어가는 9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학교에서 겪었던 희로애락과는 다른 결의 애틋한 감정을 지난 반 년 동안 겪어 왔으니, 앞으로 남은 4년 반의 시간은 또 어떨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과거에 참 즐거웠지'라는 아스라한 기억만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곳에서의 시간을 힘찬 추억과 발판 삼아 더 나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도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교직에 대한 전문성을 더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듭니다. 물론 이전에도 나름대로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외연을 넓혀보려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뭔가 핵심에 다다르지 못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왠지 그런 건 촌스러워 보이고, 나는 '그 외 다른 것'도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될 거야, 라는 마음으로 늘 뭔가 외도하듯이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역시나 돌아보니 덕분에 삶의 빛깔이 다채로워지기도 했지만요. 그래도 남은 시간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부끄럽지 않게, 후배교사들에게도 민망하지 않게, 동료들과 더 즐거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도록.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생들에 대해 더 열심히 연구하고, 교과 전문성을 위해 스터디하고, 학부모와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귀를 열어두고, 동료 선생님들과 교류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삶. 아, 갑자기 두근거립니다.


언제고 그런 삶을 꿈꿨었는데, 교직에서는 그런 열망을 실현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임 때는 또래가 많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교직에서 느꼈던 갑갑함에 이곳을 떠나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상처만 안고 퇴직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회의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교사들 사이의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고, 많은 선생님들이 각개전투 속에 가슴 속 굵직한 상처를 다들 몇 개쯤은 안은 채로 그저 수업과 업무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요. 그러는 사이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며 시간이 흘러흘러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언제나 발버둥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책읽기를 이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낳기 전에도 그랬지만, 낳은 이후에도 새벽 시간을 사수하며 한 해에 100여 권의 책들을 언제나 읽어왔습니다. 그때는 그런 책읽기가 어디로 나를 데려다줄지 알 수 없었어요. 늘 공부하고픈 열망,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찰랑거렸는데, 어쩌면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을 위해 준비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정기전보를 앞두고 지금의 우리학교를 발견(?)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교직 생활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를 닮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정말로 현실로 나타났고, 같은 서울 하늘 하래 이렇게 다른 분위기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어요.



(*이 학교로 전보발령받게 된 이야기는 아래 글에 자세히 썼습니다. ^^

https://brunch.co.kr/@howgreat99/19


이 글은 지난 8월 31일, 브런치를 통한 제안으로 카카오뷰 '글쓰고읽는중' 큐레이션 보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https://view.kakao.com/v/_IYsbs/k5NIGrVZve




물론 교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각종 어려움은 이곳에도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교직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이미 짐작하실 만한 그런 여러가지 문제들은 이곳에서도 선생님들의 여전한 고민거리이지요.


그럼에도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같이 애쓰고 마음을 모으고자' 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이 만나,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되어주고, 성장의 자극이 되어주며, 기댈 어깨가 되어주는 말 그대로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다른 점인 듯 합니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에 대해 써보려다가, 역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게 되네요. 마치 '교회'란 건물이 아니고 '두세 사람이 모인' 바로 그곳이 교회다, 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합니다.


바로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추운, 냉난방이 잘 되지 않고 화장실도 열악한데다 복도는 길고 컴컴한 그런 분위기의 학교였어요. 아마 많은 공립학교가 그런 건물을 갖고 있을 거예요. 그 곳에서 출산과 육아휴직을 거듭하면서 10년을 있었답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학교 내신을 앞두고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에서 일해보고 싶어요'라고 기도할 정도였으니까요.


냉난방을 '행정실에서 알아서 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이전 학교에서의 생활과는 다르게, 교사든 학생이든 교실에 있는 전원을 직접 켜고 끌 수 있고, 온도도 직접 조절할 수 있으며, 교실마다 디폴트로 공기청정기도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놀라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21세기 교육현장에서 이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라니, 하고 더 놀라실 듯)


화장실도(!) 너무 깨끗하고요. '아이들이 휴지를 많이 쓴다'는 이유로 화장실에는 휴지를 설치해두지 않고 교실이나 교무실에서 화장지를 둘둘 말아 가져가야만 했던(아, 정말이지 인권 보호가 안되는 것 아닙니까ㅠ.ㅠ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이전 학교에서의 생활. 이곳에는 화장실 칸칸이, 그것도 모자랄까봐 층층이 예비 화장지까지 쌓아두는 살뜰함까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렇지만 학교, 특히 오래된 공립학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모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화장실이 제일 좋다고.. 헛헛.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 소개를 하려다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대한민국은 미래를 책임질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 건물에도 좀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정말이지 아이들이 화장실조차 편안하게 못 쓰는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밝은 미래를 상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래도 여전히 애쓰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어 버텨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고요. 냉난방도 잘 안 되는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하고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아래 사진은 주로 올 봄에 찍은 학교의 모습들이에요. 앞으로 천천히 조금씩 올려볼게요. :)


새 터전에 심겨진 나무에서, 용케 대견하게도 꽃을 피워냅니다. 우리의 첫 시작도 저렇게 미약하지만, 조금씩 작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을 거라 믿어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가냘팠던 가지도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가고, 우리의 땀과 눈물도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기를 기도해 보며.


학교 바깥 조금 멀찍이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라(아마도 2월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건축 자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네요. 원래 2020년 2학기에 개교하려던 학교인데, 시공이 오래 걸려 개교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정기전보 시기에 맞추어 이 학교로 오게 된 것이지요! :)


계단 위로 통창이 나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뻗은 복도는 일제 시대 감시체제의 영향이라고 하지요. 이 학교는 그런 구조에서 멀리 탈피해 있습니다. 많은 곳이 트여 있고, 아이들은 복도를 거닐고 계단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엠그라운드도 합니다.


(*학교에 대한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보안을 문제 삼는 댓글도 많더라고요. 학교 당직기사님이 얼마나 시건을 철저히 하시는지 퇴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곳곳의 문이 잠겨 당직실 바로 옆으로 난 문으로 뽈뽈 퇴근해야 한답니다.)


복도로 난 통 창을 이리저리 찍어보았습니다. 햇살이 들면 더 아름답게 빛이 들어옵니다.


계단을 오며가며 만나는 바깥 풍경. 지금은 바깥 나무가 훨씬 울창해져서 초록이 가득입니다. 이런 풍경조차 제게는 당연하지 않아 오며가며 사진으로 담아두고는 합니다.


책상이 들어오기 전, 빈 교실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반의 스토리도 아이들과 함께 써나가고 있지요. :)


기자재 성애자는 에어컨, 공기청정기 제어장치까지 찍어두었습니다.. 사랑해요 엘지 (뭐하는거니)


강당 옆으로 작은 대나무 중정이 있어요. 어두컴컴한 강당이 아닌, 하늘이 열린 중정에서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화사한 공간입니다.


중정에 붙은 팻말이네요. 알루미늄 팻말의 '작은 견고함'이 마음에 쏙 듭니다. 큰소리 치지 않는, 이곳은 어디라고 살짝 알려주는 이 작은 팻말이 저는 너무 좋아요.


홈베이스에서는 매트를 깔고 요가나 필라테스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음악을 틀고 구령을 외치는 선생님의 경쾌한 소리가 교무실까지 타고 흐릅니다.


학교 옥상이에요. 안타깝게도 안전을 위해 항시 잠겨 있습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문을 열고 햇살을 쬐러 나갑니다. 가을에는 더 많이 나가야겠어요.


옥상에서 내려다 본, 삼각지붕의 집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듯한 모습의 층층이 마을 같은 학교.


별 걸 다 찍는 교사-_- ㅎㅎㅎ

우리 학교 급식도 좀.. 맛있습니다.


가구가 다 들어오기 전, 모 교무실의 모습입니다. 남쪽으로 통창이 나 있어 햇살도 얼마나 잘 들어오는지 카페가 따로 없는데요. 아쉽게도 제가 쓰는 교무실은 아니에요.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꼭 한번은 이 교무실에서 근무해보고 싶네요.


여기가 제 자리입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평소에는 훠어어어얼씬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만.. 허허.


야근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학교의 야경이 좋아 기록으로 담아봅니다. 언젠가는 지금을 그리워하게 되겠지요. 보통의 학교에서는 저마다 들고나는 시기가 다른데, 여기서는 '요이땅' 하고 같이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5년의 시간을 꼬박 같이 근무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년의 시간이 모두 흐른 뒤,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눈빛만 봐도 아는 그런 사이가 되어있지 않을지.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로 수시로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사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마도 '다 얻은', '다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에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면, 지금을 추억하며 또 하나의 글을 남겨볼 수 있겠지요. :)


뻐근한 귀갓길이지만, 학교에 애틋한 '안녕'을 건네며, 오늘도 무사히,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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