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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Sep 15. 2021

신혼 첫날을 모텔에서 보낼 수는 없는데

우리의 신혼여행기


남편과 처음 만났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옛적(?) 일에 관해 쓰다보니 고구마줄기처럼 그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오늘은 남편과의 결혼식이 있었던, 십수 년 전의 그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남편과 결혼식이 있었던 그 날은 뭐랄까 약간 하늘이 흐렸다. 6월 23일 토요일 오후 4시, 결혼식에 많은 돈도 잡다한 절차도 생략하고 신혼여행에 올인하고 싶었던 우리는(우리 이때도 그랬구나..) 예식장을 몇 군데 보지도 않고 여의도에 있는 교원공제회관 예식장에서 결혼식 및 소위 '스드메'까지 모두 계약해버렸다. (막상 계약하고 나니 뭔가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둘 다 직장생활 하면서 여기저기 더 알아볼 여유도 별로 없었음)


결혼식 당일에는 새벽부터 준비해서 계약된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과 머리를 하고(되게 올드한 콘셉트여서 무척 마음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남편 머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했으면 했지만 남편은 더 하기 귀찮아해서 뭔가 빈정상한 상태로 예식장으로 직진-_- 알고보면 저희도 현실부부입니다?), 드디어 딴딴따딴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남들은 결혼식 때 긴장도 한다던데 긴장은 1도 없고 결혼식 내내 머릿속에서는 '아 빨리 끝내고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하객들은 모르것지. 그 와중에 넘나 빵긋빵긋 웃어서 나중에 셋째 작은엄니가 나한테 '너희 엄마 서운하게 너무 웃더라'며 후문을 전하시기도 했다는.


참, 이때 내가 첫담임하고 있던 제자들이 우르르, 그야말로 우르르 몰려와서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아니 축하를 해주기도 했는데, 특히 나를 참 좋아해줬던 녀석이 신부 대기실에 와서 한참 머물다 가고, 남편에게는 '우리 선생님에게 잘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는 기억도 떠오른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고 결혼식 장면을 찍고 난리여서 가히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 예예, 죄송합니더. 고사리손 모아 선물과 편지를 건네준 너희의 어여쁘고 귀여운 마음도 선생님은 평생, 간직하고 있단다. 모두 잘 살고 있지? 샘의 담임으로서의 첫제자이자 사랑이었던 너희들(갑자기 사랑고백).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폐백도 하고(와, 이때 참 어르신들께서 되게 넉넉하게 챙겨주셨었다. 물론 모두 갚아야 하는 것들이지만서도. 신혼여행지에서 돈 세었던 기억이 갑자기 모락모락), 식당에서 요기조기 인사도 하고(이때는 이미 정신줄 나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남), 드디어 결혼식의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브야호)


갑자기 떠오르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아끼는 모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M이라는 후배는 천상 시인인데(작고하신 아버님도 시인, 이 친구도 시인-수사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시집을 낸 시인임), 가끔 이 세상 사람의 언어가 아닌 너무나 해맑고 순수한 말들을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자지러지게 할 때가 종종 있었더랜다. 이 친구가 결혼식 일주일 전 토요일에 전화해서 하는 말,


"언니, 오늘 언니 결혼식 아니에요? 결혼식장에 왔는데 언니네 예식장이 안 보여서요!"


하핫, 웃어야 할지 놀려야 할지. 지금 생각해도 귀엽고 참. 어찌 지내나. M의 전화번호가 자꾸 바뀌는 통에 카톡 플필도 자꾸 다른 사람으로 변경되고 지금은 연락처를 알 수가 엄따.ㅠ_ㅠ 주변에 다시 수소문을 해봐야겠다. 그 이후로는 EBS 만화 스크립트를 쓴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게 맑고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겠지.




결혼식이 모두 끝나고, 하늘은 조금씩 흐려지면서 왠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실제로 조금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주차장에는 남편의 동아리 후배이자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된 후배들 S와 S.. 그러니까 둘 다 이니셜이 같네. 앞의 친구는 SS라고 하자(성에도 이름에도 S가 들어감). 뒤의 친구는 S. 참고로 이 친구는 황폐해서 구독자도 별로 없고 댓글 달아주는 이도 거의 없다시피 하던 나의 브런치에 가장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던, 지금은 파워 브런치 작가(?)가 된 친구​이기도 하다능. 하핫.


남편과 그때를 떠올려보려고 이리저리 기억을 맞춰봤는데, 지금도 헷갈리는 것이 S의 차를 SS가 운전했는지, SS의 차를 S가 운전했는지, 아니면 SS의 차를 SS가 운전했는지가 기억 속에서 묘연하다는 것이다(아마도 S는 또렷하게 기억할 듯?). 글을 쓰기 전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SS는 모 교회의 부목사(!)가 되어 있었고(당시 꿈이 진지하게 '대통령'이었던 신기한 친구였음. 아마도 전공은 경영학이었지. 지인들 중 우리학교 경영학과에서 이 친구 포함 두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 S는 브런치를 방문해보면 아시겠지만 학예사가 되어 지금은 육아휴직 중인 아빠로 브런치에서 가열차게 엄청나게 재미난 글로 1,000명이 넘는 구독자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슴미다? ㅎㅎ


아무튼, 그런 SS와 S가 앞좌석, 나와 남편이 뒷좌석에 타고 넷이서 아마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천공항 근처 모 호텔로 향했다. 그렇다, 정말이지 호텔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마도 남편이 예약해 둔 '인천 에어포트 호텔'이었다. (여기에서 1박한 후, 다음 날 인천공항에서 싱가폴을 거쳐 몰디브로 가기로 함)


아마도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향했으리라. 넷이서 신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러가지 덕담을 건네며 차츰 목적지에 가까워지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들 조금씩 말수가 줄어들었다.


음.. 다 왔나봐요.
여기인가요?



사실 누가 뭐라고 말을 건넸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넷 다 모두 너무나 당황해서 거의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인천 어딘가 작은 스트리트 안쪽에 위치한.. 이름만 '인천 에어포트 호텔'인 모텔이었던 것이다!!!!! 왓더.. 예약하느라 수고한 남편을 탓할 수도 없고, 후배들은 그런 남편에게 의문을 던져보기도 민망하고, 남편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건넬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다들 말없이 신속히 캐리어를 내리고, 프런트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텔호텔 직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이 풍선 단 자동차가 대체 왜 여기에 온 거야? 하는 표정이었달까.


남편이 이름을 얘기하고, 직원들은 투숙객 예약자 명단을 살폈다. 잠시 숨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놀랍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거기에는 우리의 이름이 없었다! 정황인즉슨, 우리는 '인천 에어포트 호텔' 아닌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향해야 했던 곳은 인천 시내의 '인천 에어포트 호텔' 아니라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인천 에어포트 호텔'이었던 것이다....!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인천 에어포트 호텔(이름이 길기도 하지)은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 근처에 있는 나름 그럴듯한(?) 호텔인 것 같다. 혹시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지금은 내부 수리 중인가 해서 영업을 쉬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으려나. 아무튼 여전히 살아있는(?) 호텔인 것이다. (제목과 함께 올린 사진이 이 호텔의 모습)


그때 다들 내쉬었던 안도의 한숨을 잊을 수 없다. 차마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며 '아 이 사태를 어쩌면 좋지' 했던 그 아찔했던 순간..! 정말이지 '이 곳에서 신혼 첫날을 맞이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며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이야 기가 막혀서 껄껄 웃게 되지만 말이다. 남편과 이후로도 몇 번이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웃고 또 웃었는지 모른다.


아마 S와 SS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겠지? 넷 다 너무나 아찔해했던 순간이니 말이다. 그래도 두고두고 고마운 건, 흔쾌히 자차를 내어주고 함께 준비해준 친구들. 먼 길을 운전해주고 또 동행하며 즐거운 농담을 건네준 친구들. 그리고 그 당황스러운 순간까지 함께 겪어준 이 친구들에게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것.


그 이후로 함께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았을걸,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다. (남편이 아마도 소소한 금일봉을 챙겨주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또 즐거이 만날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모두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고, 또 앞으로의 나날에도 기쁨 있기를 기도하며.




그날 밤, 우리는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인천 에어포트 호텔'에서 와인 한 잔 마시고 뻗어버렸다는 후문입니다. 아 물론 남편은 술을 마셔도 마셔도 티가 안 나는 타입이지만 본인은 한두 잔 마시면 졸음을 참지 못하는 술알못이라..


덧붙여, 혹여 신혼 첫날을 소규모 호텔 또는 모텔에서 보낸 분도 있을까 하여, 문득 이 글이 상처가 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꿈에 부푼 신부의 당혹스러웠던 나날의 일기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 (^^) <-옛날사람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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