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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Sep 05. 2021

결혼하고 5년만에 아이를 낳은 이유

딩크족도 아닌데


남편을 처음 만난 건 교회 청년부였다. 말 그대로, '교회오빠'랄까.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교회오빠'의 장점을 가졌으면서도 유연한 사고방식과 취향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기에 한 시간에 나를 열두 번씩 웃게 하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언어유희적 유머감각을 갖춘 사람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보면서 '이런 사람을 안 좋아할 수가 있나?'라고 혼자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 둘 다 각각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둘 다 롱디를 하고 있었고, (아마도) 각자의 관계에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런 때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에 남편이 지인들을 통해 오게 되었고, 교회가 다니던 대학 바로 앞이기도 해서 교회 선배이자 학교 선배이기도 한 '교회오빠'로 남편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교회에 오기 전에 대학 동아리에서 대표를 맡았다는 그는,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도 회장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나는 그와 더불어 부회장을 하게 됐다(아담한 교회여서 그냥  다니다 보면 임원도 하고 찬양팀도 하고 성가대도 하게 되는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쩌다보니(?)   각각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고, 회장/부회장/회계/서기가  임원 넷이서 회의한다고 모였다가 놀고,  일한다고 모였다가 롯데월드 가고  그런 식으로 일하다 놀다가 일하다 놀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때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직 남자친구가 되기 전의 남편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 주말에 교회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중에는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도 만나고 서로 자리도 잡아주고 아니 주로 내가 늦는 쪽이라 자리잡아준다면 그 '교회오빠'가 해주고. 학교에는 그 말고도 다른 선후배 친구들도 많아서 같이 어울려 밥도 먹고 노래방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음료수도 건네고 뭐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친해지고 정도 들고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는데, 나중에 둘이 만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당시 청년부 목사님이자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도 일하고 계셨던 K목사님을 신사동에서 만났더랜다. 그때 목사님은 우리에게 "언제 말해줄지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답하실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빼고는 남들은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랄까.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하긴 나도 이제는 누가 누구에게 호감이 있으면 그게 그냥 보이더라. (자기만 모름)


그렇게 우리는 그냥 CC도 아닌 더블 씨씨double cc가 되었다. 그러니까, 캠퍼스커플이자 처치커플인 파트너랄까. (더블 씨씨라는 말은 없고요 제가 만든 말입니다 우리 둘을 생각할 때 떠올려지곤 하던 말)


남편과의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서 둘이 가까워진 과정도 쓰다보니 속속들이 생각나는데, 이건 아무래도 다음 글에 써야겠다. ('대체 이 사람 왜 이러지?' 싶은 그런 포인트 말이다)




남편은 나보다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임고를 준비하던 나는 1차 시험을 끝내고 2차를 앞둔 시점이었다. 어찌어찌 고백을 받고, 그 해 1월 23일이 우리에겐 '오늘부터 1일'이 되었다. 아니다, 2차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점이었나? 아무튼, 사실 나는 시험에 붙지 않으면 누구도 만나지 않으려고 했었다. 어떤 불안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편안하게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런데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 이미 우린 친해져버렸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린 것.


아마 그때 내가 나의 상황에 대한 염려를 얘기했던 것 같고, 그때 남편은 "시험에 합격하지 않는다고 네가 다른 사람인 건 아니잖아. 너는 그냥 너니까." 하는 식으로 멋드러지게 대답을 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같은 질문을 했을 때의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내 예감에 너는 왠지 합격할 것 같았어.


아, 글로 쓰고 보니 뭔가 마치 '난 널 믿어'인 것 같지만, '너 붙을 줄 알았지롱~'에 가까운 어감이다. -_-


그렇다. 남편은 뭔가 애잔한 결말을 언제나 예능으로 바꿔버리는 사람이다. 나 혼자 뭔가에 감격하거나 감동하고 있으면 그걸 가벼운 유머로 치환하는 사람. 아님 자책의 늪에 빠지거나 쓸데없는 반성으로 내 마음을 축내고 있으면 옆에서 아예 한술 더 떠주거나 '별것도 아닌 일'임을 일깨워서 내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사람.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던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는데, 이런 점도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남편은 알랑가몰라).




물론 살아오면서 투닥거릴 때도 있고, 아이들 낳아 키우면서는 둘 다 극기훈련의 시기를 거쳐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큰 탈 없이 둘이서 알콩달콩 여기까지 잘 헤쳐온 것 같다.


이건 얼마 전 결혼 기념일에 남편과 주고받은 톡 메시지. 어느덧 둘이 살아온 시절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남편과 연애한 이야기가 아니라, 둘이서 결혼 후 여행다닌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건데. '남편'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쓰고 말았네.


그러니까, 이 부부는 결혼하고 줄창 5년을 요기조기 싸돌아댕기고 놀러댕기느라 출산을 미루고 또 미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양가 부모님이 뭐라 말씀은 못하시고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을지 지금 생각하면 좀 죄송스럽기도 하다능. 결혼 후 3년쯤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조심스럽게 "아이 낳으면 우리가 봐줄게!"라는 말씀을.. 결국 아이를 둘이나 낳은 이후 지금까지도 양가 부모님의 신세를 지며 불효를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ㅠ_ㅠ)


둘이서 여행다닌 이야기는 앞으로 조금씩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역시 연애 이야기가 쓰면서도 재미있긴 하네요(읽는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ㅜㅜ). 그 시절 이야기도 가끔 써볼까봐요.


메인에 올려둔 사진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였던 '몰디브'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정말이지 어디를 보아도, 아무데나 막 찍어도 엽서가 되는 그런 곳이지요. 그맘때 신혼여행지로 몰디브가 최고 인기였는데, 동네에서 젤로 친하게 지내는 E와 B네 부부도 모두 몰디브에 다녀왔다고 해서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그 시절엔 몰디브 가라앉기 전에 다녀와야 된다고 해서들 말이지~" 하면서요. 이젠 참 이 시절이 아련한 옛일처럼 되었네요. 몰디브에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한 서양인 부부를 보며 "우리도 나중에 아이들 데리고 오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그 날이, 언젠가는... 올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주말 되시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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