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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Jul 14. 2021

초대장을 건네는 마음

우리끼리 북클럽


얼마 전 아침 일찌감치 출근해서 학교 메신저를 켜고 정성들여 메시지를 써내려갔습니다. 아마 교직에 들어선 이래 가장 정성스럽고, 가장 길게 쓴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가장 알록달록(!)한 메시지. 같은 학교 선생님들과 복작복작 책모임을 만들어보기로 했거든요. 우리 학교에 오면서 선생님들과 뭐라도 해보고 싶었고, 그 뭐라도가 뭐일지 모르고 흘러흘러온 지난 한 학기였어요. 신설학교에서 각자 다들 업무와 수업으로 바쁘고, 거기다 담임까지 하면서 더더욱 눈썹 휘날리는 시간을 보내왔어요. 6월 즈음이 되면서 그제서야 차츰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렇게 작당 모임도 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꿈꿔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뭐라도'가 이 '뭐라도'가 될지는 몰랐지만요.


말로는 책모임 하자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뭔가 뜬구름 잡는 듯 막연한 기대감만 있는 것 같아 조금 구체적으로 써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식으로 그리고 격식을 갖춰(?) 초대하고픈 마음도 있었고요. 대충 휴지 접어 보내는 듯한 마음이 아닌, 정성스러운 마음을 건네야 기쁨으로 화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단어를 고르고, 문장과 표현을 다듬으면서 나름대로의 마음을 곱게 담아 떨리는 마음으로 '발신' 버튼을 눌렀습니다.


한다고는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으면 어떡하지, 아무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기분만 내다 말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메시지를 받은 분 모두가 함께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제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까지 이것저것 내어주셨어요. 앞서 포스팅에 적었던 것처럼, 방학 때 에어비앤비를 잡거나 학교에 모여 아예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꼬박 보내며 다함께 워크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아, 생각만 해도 재미난 걸 어쩌나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들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기는 합니다만ㅠ.ㅠ) 그저 이렇게 함께 즐거운 것들을 상상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즐겁습니다.


그리고 어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드디어 사전 미팅 시간을 잠깐 가졌습니다. 각자 사정이 있는 분들이 계셔 전원 참석은 못했지만, 앞으로의 모임의 방향과 운영 방식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 톡방에 공유했지요. 정말이지, 우리의 모임은 뭐가 될까요? 그리고 뭐, 또 뭐가 되지 않으면 어떤가요. 함께 즐겁고,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남았다면, 그게 바로 '뭐라도 된 거' 아닐지. 그래도,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네요. 일단 호스트로서 책임을 다해야지요 :) 그래서 어제 비록 사전 모임이지만 나름 짤막한 페이퍼를 만들어 논의할 주제를 적어 공유하기도 했지요.


일단 시작해서 기쁜 마음을 뒤로 하고, 조금은 어깨가 무거워져서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 『독서모임 꾸리는 법』을 읽어보고 있어요. 독서모임만 몇년째 운영하고 있는 분이 쓰신 책이라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되네요. 이 책에 소개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넷플릭스에서 찾아보고,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함께 모여 학교에서 같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이런 생각을 하면 또 설레고요>_<). 이왕에 시작한 거, 즐거이 의미있게 굴러가도록 할 수 있는 역할을 '지혜롭고 위트있게' 해나가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따뜻함과 성장이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며..




*아래는 초대장 메신저 캡처본과 그 내용




(*중략)






                                    *초대장*


안녕하세요, 이 메시지를 받으시는 분들은

소소하지만 은근히 가열차게 시작해보려고 하는

독서모임에 이미 초대를 받으셨거나, 들어보신 분들께 보내드립니다.


말로만 책모임, 책모임이라고 하여 대체 뭘 할거냐? 하고 궁금하실 것 같아

약간의 디테일을 보태어 소개해 드립니다.


*테마 : 책읽고 책수다, 우리끼리 알쓸신잡

*모임 일정 : 2~3주에 한 번 화요일 또는 수요일

(목, 금이 좋을 듯 하나 지송합니다 모임 주최자가 애기엄마라 친정엄마 오시는 요일에만 모임 가능 ㅠㅠ)

*방법 : 원래 혼자 읽기 어려운 벽돌책스러운 것들을 함께 읽어나갈까 했는데, 혹 부담될까 하여

    1) 얇은 책을 함께 읽거나

    2) 두꺼운 책을 챕터별로 나눠서 정리하고 발제해 오거나

    3) 각자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눠보거나

    4)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기타 등등

*부록 : 책을 읽고 관련된 플레이스 탐방+지적인 척 하는 우스운 수다+맛집뽀개기..


*책모임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

  - 일단 왠지 어려운 책을 읽으면 있어보임

  -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책모임까지 하면 더 있어보임

  - 직장생활에서 외로운 쭈구리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음

  - 다양한 전공이 모여 있어 우리끼리 알쓸신잡 찍을 수 있음

  - 같은 걸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구나 배울 수 있음

  - 우리의 모임을 차근차근 기록해보면, '뭐라도 되겠지'(소설가 장강명의 책 제목)


(*중략)


하여, 점점 더 심각해지는 시기에 학교 밖에서는 만나기 어려울 것 같고,

방학 전 (역시 다음 주 화 또는 수에) 사전 모임을 갖고,

방중에도 시간 되면 시작해볼까 합니다. (안 되면 2학기로ㅠㅠ)


왜, 굳이,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을, 벌이려고 하느냐고요?

애기엄마들이 동굴 안에만 갇혀 있다가 비로소 밖에 나오면 이렇게 됩니다...

펄펄한 20대를 보내다 30대를 애기 키우는 데 다 보냈네요 ㅋㅋㅋ

이제는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어요~~

그치만 혼자 날면 재미없으니 좋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이 모임은, 폐쇄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차후 다른 분들도 합류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아직은 수줍어서^-^ 전체 메시지는 차마). 저의 제안을 받아보신 분들도 '굳이 학교에서 책모임을..' 부담이 되신다면 절대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작은 초청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 거절하셔도 됩니다만 거절당하면 슬프겠지 아유 그러지 말고 함께해유



가능하다면,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학교 공동체를 꿈꾸고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더 크고 좋은 것을 몽글몽글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런 불씨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너무 길었네요, 저 교직에 들어와서 써본 메시지 중 가장 길군요.. 미안합니닷..

그래도 초청장인데 정성들여 써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


그럼, 초청에 응해주시면 바로 첫미팅 어레인지에 들어갑니다.

참, 당분간 모임 장소는 4층 나눔카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모두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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