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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Mar 26. 2023

더더욱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깝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라는 책 제목은 나에게 늘 넘치도록 와 닿아있는 일상이다.



어떤 날 쉬는 시간 어린이들 중 한 명은 나에게 와서 “선생님 ! 제가 눈 감고 종이학 접는거 보여줄게요! “ 하더니 눈을 감고 종이학을 접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어린이는 교실 안에 있는 보드게임 상자 속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큐브를 갖고 오더니 “선생님 저는 다이아몬드 큐브 사각형 큐브 피라미드 큐브 집에 큐브가 엄청 많아요! 제가 이거 엄청 빨리 푸는거 보여드릴까요?” 하더니 으응?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양손을 움직이며 큐브를 풀기 시작한다.



 그 옆에 찾아온 또 다른 어린이는 정성스럽게 그려온 자그마한 캐릭터 그림 조각들을 여러 개 그려와서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이게 뭔지 하나하나 이야기해준다. 동시에 찾아온 또 다른 어린이는 종이에 손가락을 베었다고 한다. 그 옆에 또 다른 어린이는 가져온 물통 뚜껑이 잘 안 열린다고 들고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어린이는… 마치 이상의 시에서 제 5의 아해 다음 제 6의 아해 제 7의 아해 결국 십삼인의 아해가 모이는 그런 느낌적 느낌 속에서 나는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구급함 속 연고와 밴드를 꺼내 치료를 해주며 동시에 관람도 하고 감탄도 하고 칭찬도 해준다. 이 모든 게 쉬는 시간 10분 동안 동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보통 일어나는 일.



아침부터 수업시간 중에도 업무메시지가 컴퓨터에 수십개 넘게 와있어 쉬는 시간에 빨리 훑어보려했던 계획이 있었지만 음 그래 뭣이 중한디, 하며 침착하게 쏟아지는 업무들과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애써 문지르려 노력하며, 아웃포커스 시켜두고 눈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려 애쓰는 일상. 내가 원하는건 적어도 최소한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그 시간만이라도 ‘밀린 다른 업무들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제발 온전히 온 몸과 온 마음을 다 오롯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그게 교사의 정말 진짜 진정한 업무라고 생각하지만, 내 교직생애에 과연 그럴 날이 올까 싶으면서 오늘 하루도 그렇게 바짝 반짝 급속충전된 하루살이처럼 바삐 보내고야 만다.



©이수지 작가님



3월은 학년도가 시작하는 학기초이기도 하고 담임업무와 각종 행정업무들과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업무까지들로 퇴근하고나서와 주말까지도 쌓여있는 일들에 압사당하던 날들이 이어졌는데, 그럼에도 더더욱 실은 중간중간  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책을 읽기가 너무 너무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처음부터 세세히 다 읽지도 못했고 정말 많이 건너뛰기도 했다. 보호자나 업무 관련으로 민원전화를 연달아 계속 받았던 어떤 날은 ‘이렇게 끊임없이 내는 아이의 목소리’를 이제 내가 책으로도 봐야되나 싶어 오히려 독서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아 어떻게든 읽어보려다 책을 덮기도 했다. 소음에 취약한 나의 직업은 아이들이 오는 순간부터, 밥 먹는 중에도, 집에 갈 때까지, 때로는 자주 퇴근 후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규교사 때 옆 반에 30년 가깝게 근무해오셨던 한 선배교사 분은 아이들이 가고난 후에는 꼭 교실 문을 모두 닫고 모든 불을 끄고 모든 블라인드를 암막처럼 친 다음 조용히 10분 동안 꼭 앉아있어야 살 것 같다고 하시며, 집에 가서도 아무 소리없이 절간처럼 조용히 지낸다 하셨었는데, 나도 처음에는 왜 그러신지 몰랐었다. 또 예전에 발령동기였던 동료선생님은 발령 후에 1년 정도 같이 근무를 하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왔는데, 군대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급식실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왜 식사를 안 하는지 물으니 너무 시끄러워서 밥을 먹어도 늘 체할 것 같다고 했다. 맞아,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지. 어쩔 수 없이 엄청나게 시끄럽게 끊임없이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은 사실 시끄러운 게 당연하고 늘상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이 종일 조용히만 있거나 또는 한 자리에 가만히만 있다면 어쩌면 그 아이는 마음이 아픈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말을 시끄럽게 많이 하며 배우는 것이 당연한 가운데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 시간과 장소에 알맞게 말하는 법, 듣는 상대방을 고려하고 마음을 헤아리며 말하는 법, 말하기 전에 먼저 진심으로 경청하는 법, 공식적인 말하기 방법과 더불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법, 까닭을 들어 조리있게 말하는 법 등 수십수백가지의 말하기를 배울뿐이다. 말하기에도 배움과 연습, 성장이 필요하니까.



올해 우리반 금쪽이 중 한 명은 말하기 연습이 많이 부족한 어린이다. 학교에 와서 집에 갈 때까지 자꾸만 모든 수업의 흐름을 끊고, 목소리가 매우 크고 거칠며, 큰 목소리로 “아, 망했어. 재미없어. 하기싫어.” 라며 부정적이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아침맞이를 하며 이미 모두에게 해 준 이야기임에도 국어시간 중 난데없이 “이따 체육시간에 운동장 나가나요?”라고 갑자기 학습과 관련이 없는 질문을 해대고, 활동을 설명하는 중에도 수시로 끊임없이 끼어든다. 자신이 한 일을 마치기 전에 옆에 앉아있는 친구의 행동을 간섭하고 크게 지적하기를 일삼는다. 경청을 다 한 후에 활동에 대해 질문시간을 갖자고 했음에도 기다리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손을 들지도 발언권을 얻지도 않은 채 모든 시간마다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말한다,기 보다 내뱉는다고 말하는 게 적당할까. 쏟아낸다. 정말 많이 쏟아내고 쏟아낸다.



©이수지 작가님



금쪽이와 나는 고작 만난지 한 달도 안되었지만 나름으로 친절하게도 대했다가 단호함도 보였다가 하면서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물론 아이들은 칭찬해주는 만큼, 칭찬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그만큼 쑥쑥 성장하고 자라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찾아낸 금쪽이의 장점을 엄청 방대하고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금쪽이가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점이 엿보이면 슬쩍 가서 금쪽이만 들리게 ‘잘하고 있다, 수고했다, 선생님은 네가 노력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앞으로도 믿는다’ 고 말해주기도 한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너무 긴 대부분의 많은 시간들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래도 너와 내가 인연으로 운명으로 이미 만났음에 아주 작은 의미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런데 오늘 하교길에 그 금쪽이가 갑자기 “선생님, 전 지금까지 만났던 선생님들 중에 선생님이 가장 좋아요. 학교도 맨날 오고싶어요.” 라고 난데없이 쑥 고백을 해오는 게 아닌가,



아니이 갑자기 이.. 이런 말을 하다니. 이럴수가. 아니 이 존재는 도대체 뭘까, 가슴이 쿵.



눈 감고 종이학 접다가 결국 색종이가 찢어진 어린이도, 큐브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잘 안되지 하다가 결국은 풀어낸 어린이도, 생애 처음 학급회장선거에 나섰다가 자신에게도 표를 안 주어 0표를 받고 속상하다고 울었던 어린이도, 색연필로 사각사각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내 자화상을 그려주는 어린이도, 고이 접은 색종이와 그림들을 선물해주는 어린이도, 자꾸만 몸 이 곳 저 곳이 아프다고 쉬는 시간마다 오는 우리 어린이도, 그리고 이토록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올해 우리반 금쪽이까지 !



그래 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존재들아, 우리 더더욱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깝게,  한 해 함께 흔들흔들 우당탕탕 으쌰랴으쌰 잘 지내보자 우리.



©이수지 작가님




이호우  2022.5.27

그림 애정하는 이수지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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