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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Apr 20. 2020

1-4왕따 당하면서 엄마한테 말을 안 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말을 안 해서 몰랐어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아이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집에서는 명랑하고 밝은 아이였어요.”


 아이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부모의 이런 고백은 낯설지 않다. 


왜 말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부모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말해봐야 부모가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모가 아이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아이의 요청을 잘 살피지도 않으며, 아이 입장에서 아이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말을 안 한다. 

 부모들이 그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안다. 부모가 아무리 윽박지르고 화를 내고 가해자 부모를 만나고 학교와 교육청을 들락날락거리고 방방 떠봐야 부모에겐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그동안 몇 번 도움을 요청하고 하소연도 해봤지만 부모의 해결 방식이 저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모두 파악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아무런 요청도 언질도 주지 않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말하면 부모님이 힘들어지실까 봐 말을 안 했어요.”

 “나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어요.”


 다 뻥이다. 속뜻은 이렇다.    

 

“부모님에게 말해봐야 해결해주지 못하실 게 뻔해서 말 안 했어요.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부모님이 알면 문제만 더 커져요.”     


누구한테 맞았다고 하니까 야구방망이를 들고 가서 대신 두들겨 패주는 아버지, 그래서 동네 유세시키는 아버지에게 아이는 다시 맞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가 맞고 다녀도 꿈에도 모를 수밖에. 그러고는 아버지 힘드실까 봐 말 안 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도 많으신데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게 힘드시겠지.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또 동네 창피하게 만드실까 봐 말 안 했어요. 그러느니 그냥 맞고 사는 게 나아요.”


 부모들이 그런 문제의 조짐을 전혀 몰랐다는 말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기를 바라는 소망에 다름 아니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인가? 내 하나뿐인 삶에서 키우는 내 아이가 자신의 어려움조차 말하기 어려운 그런 부모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아이에게 우리 부모는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법을 찾아주는 좋은 부모라는 믿음을 줄 것인가? 부모의 능력은 돈이나 명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에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자식으로 키우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은 아이를 스키캠프에 보내는 것과 그리고 좋은 옷을 입혀 키우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우리가 만일 부모로서 좌절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금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할 때가 아니라, 부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움은커녕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으로 여기고 상의조차 하지 않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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