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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Mar 11. 2024

선한 사람아! 선택만큼은 이기적이어라.

네 삶은 한번뿐이다.

저는 꿈이 참 확고했어요.

몇 번 바뀌었지만 제가 기억도 못할 때 꿈이야 사실 그냥 그때 뭔가를 보고 하고 싶었던 것들 일 테니 엄마가 제 어릴 적 꿈은 광부였다고 해도 전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기억이 나서부터는 처음 꿈은 과학자였고 그 이후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집에서 불을 피워가며 뭔가를 항상 끓이거 섞어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가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통령을 꿈꾸었고 그러려면 외국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서 외교관 까지가 제 사춘기 전의 꿈이었습니다.


이때는 운동도 하고 대회도 나가고 학교 대표로 과학경시대회 수학경시대회 뭐 그런 것도 나가면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즈음 명덕외고에서 중학교 졸업 후 명덕외고로 입학하라고 해서 따로 공부도 시켜주고 방학 때는 교육청에 불려 가서 공부도 하고 그랬으니 나름의 미래 설계를 그게 실수나 실패 없이 충분히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잘 살던 집안도 어른들이 돈 욕심에 태풍이 휩쓸고 가니 그전에 제가 알던 삼촌과 어른들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나 삶도 엄청나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는 운동으로 뽑혀서 갔다가 저도 모르는 전학 수속에 당시 감독님에게 욕도 엄청 먹고 새로운 학교로 가게 되었어요. 운동부가 없는 학교로 말이죠.

당시에 육상을 해봐야(전 높이뛰기 대표였습니다) 잘되면 체육 선생님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서 사실 운동 쪽으로는 제가 진로나 장래를 꿈꾼 적이 없었어요. 위에 이야기 한대로 제 꿈은 외고를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외교관으로 거의 확실시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아직 어떤 벽을 느끼거나 경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아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가 제가 버겁다 느끼면 공부만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침 운동을 하러 간 날 감독님에게 제가 전학을 갔다는 사실을 듣고 나니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렇게 새로 전학 간 학교로 갔고 운동, 공부 모두 안 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를 해서 그냥 컴퓨터에 푹 빠져 미친 듯이 컴퓨터만 하고 살았습니다. 당시에 타자방이라는 게 유행해서 제가 그때는 타자가 많이 빨랐어요. 워낙 일찍부터 컴퓨터를 접했고 저랑 비슷하게 타자 치는 사람이 몇 명 없었으니 거기서 속기사 제의를 받았고 생각보다 굉장히 높은 월급에 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중학생이서 못했습니다. 이건 뭐 꿈이나 이런 거 보다 월급이 엄청나게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찌 되었건 중학생이라 속기사는 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이후에 제 꿈은 게임 기획자였습니다. 군대에서 까지 게임 기획을 해서 기획서를 다 짜서 나왔으니 군 제대 후 제 방향은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고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처음 온라인으로 여럿이서 플레이하는 텍스트 머드라는 것을 접하고 그때부터 게임을 그래픽화 해서 만들고 모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지요.


그렇게 초등학교 1학년때 절 리어카에 던져서 버린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제 이런 꿈을 듣고 군 제대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 보내준다고 부른 베트남에서 아버지가 하다 망한 공장에 덩그러니 놓인 채 전 사업을 하게 되었고, 이 이후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살아남아야 했어요. 이 공장이 잘되었고 베트남이란 나라에서 1-2등 하는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하다 보니 커버렸고 제 삶이 나아지나 했지만 절 두고 나간 공장에 제가 대표고 제가 CEO, 명함에 대표이사고 한들 서류 한 장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제 것도 아니었어요. 이 공장을 받은 순간부터 세월이 20년이 지나 21년 차를 보내가는 이제 와서 전 와이프와 상의해서 정말 제가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요. 참 많은 일을 했고 참 많은 회사를 돕고 주변 사람들과 거래처들의 컨설팅을 해주었고 별의 별일을 다 하면서 한 번도 못한다 생각한 적 없고 자신 있게 다 했는데 막상 내일을 하려니 제가 잘하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제가 사업이 잘될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학교 설립이 생각이 났고 그런 수준의 일을 할 수 없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내가 실천할 수 있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의 작은 선행을 하는 일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처럼 앞에서 이끌어 주는 이가 없어서 잘하면서도 항상 불안하고 잘하다가도 주변 환경과 타인에 의해서 무너져버리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며 그런 부분에 정보를 주고 어떠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최대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주절주절 한 이유는 그저 다음 이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새로 무엇인가를 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은 고민이 굉장히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네가 잘하는 일을 해라", "돈이 되는 일을 해라" 이런 말들을 하지요. 하지만 어떤 말도 책임을 지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의 모든 책임은 스스로 지게 됩니다.

그저 저라면 위에 저런 과정을 통해 이번만큼은 제가 원하는 것을 하려 합니다.


이번만큼은 온전히 저를 베이스로 가족을 위한 결정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직 가정이 없는 분들이라면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미래를 위한 결정에서 만큼은 이기적이길 바랍니다.


남을 위해 사는 일조차도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저를 베이스로 가족을 위하는 이유는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제 선택으로 한 결정이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고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고 제가 살아오면 겪은 일중 좋은 것은 주고 나쁜 것은 최대한 더 고민하고 생각해서 전하지 않으려 합니다.


위에 말 중 남을 위해 사는 일조차도 저 자신을 위해서 한 결정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세요. 그래야 오래 하고 오래 하면 돈이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나중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죠? 싫어하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 더 받습니다.

모든 일은 아니 우리의 삶 자체는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좋아하는 일이 일이라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닙니다. 그저 모든 건 과정이에요.


정말 가장 중요한 선택은 자신을 위해 하세요.

그래야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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