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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Dec 20. 2023

결혼식은 안정되면 하는 걸로

사람들이 다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한 이후 결혼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결혼에 대한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서로 이렇게 좋고 잘 맞는데 더 생각할게 있나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결혼은 제대로 준비해서 상황과 모든 것을 갖추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결혼식은 어느 정도 생활과 모든 것이 안정된 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와이프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회로는 돌아갔지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멈추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조심한다고 했지만 어느 날 뭔가 기분이 이상했어요. 이건 어떻게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데 와이프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았고 아이가 배속에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일이 끝나고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가져다주었고, 다음날 와이프는 새벽부터 저에게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보니 임신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 정말 얼마 안 된 것 같아서 확실하지 않으니 몇 주 지난 뒤 다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뒤 다시 가서 검사를 하니 이제는 정말 엄마, 아빠, 아이가 갖추어진 가족이 탄생하였습니다.


고민은 정말 불필요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제가 부모 될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좋았습니다.


나중에 와이프도 그러더군요. 전 자고 있고 테스트기는 두 줄이고 마음속이 굉장히 복잡했었다고요.

혹시나 제가 싫어할까 봐요.


그리고 와이프와 상의해 부모님들의 상견례를 서둘렀습니다. 

서로 나이도 좀 있었고 아이도 생겼는데 미룰 이유도 없었고, 결혼식은 아이를 낳고 이후에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마침 상견례 날 장인/장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며 

"지금 새로 시작하는 일이 너무 바빠 결혼식은 나중에 하겠습니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 정신 나간 소리를

자신 있게 했었습니다. 아마 이뻐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저는 싹싹 하지도 못하고 처갓집은 술을 좋아하는데

저는 술 마시는 것도 안 좋아해서 '참 미운 녀석이네.' 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때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잘 하고 있는 재활샵을 정리하고

좋은 기회에 해외 사업을 다시 시작해 코로나와 함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이가 생기고 둘이 사이가 좋다고 하니 아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와이프도 남들이 하는 것들 다 하고 싶어하고 기본적인 것들은 지켜가며 사는 사람 인지라 아마 많이 서운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을 기준으로 내후년 봄에 저희는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했어요. 늦었지만 결혼 10년 만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뭐 이런 쓸모없는 것에 집착할까? 그냥 서로 잘 살고 이혼하지 않고 

화목한 가정 이루는 게 최고지. 이런 허례허식 챙기고 이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라고 

생각하던 성격이라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저 혼자 맘 편하게 그리고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해 버린 일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런 남편하고 살아주는 와이프도 참 대단한 사람 같아요.


결혼 생각 없던, 부모 생각 포기했던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스토리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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