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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Oct 12. 2023

[이민일기]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지 말입니다

미국에서 이사하기

이사를 했다.


미국살이 11개월 차,

여름방학 맞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문제의 이웃을 발견한 지 8주 만에

1년 계약기간 중 한 달 반 여를 남기고 우리는 결국 이사를 했다.  




아래층 이웃의 흡연에 대해 집주인에게 알리고, 집주인이 HOA(Home Owner’s Association)를 통해 이야기를 전했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https://brunch.co.kr/@howyoung/101


그 과정에서 집주인이 ‘원하면 미리 낸 월세와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먼저 나가도 된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부동산 에이전트에 연락해서 집을 알아보고, 2주에 걸쳐 10개가량의 집을 투어 하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고, 가격 및 조건을 협의해서 계약하고, 마지막으로 이사까지, 그야말로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됐다.




아직 계약서에 잉크도 덜 마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이사는 여러 모로 힘들고 정신없지만 재밌고 의미있다.



우선, 인생 첫 non-포장 이사!


우리나라에서는 포장 이사가 기본이다 보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조차 모르겠지만, 맘카페(그렇다! 여기에도 맘카페는 있고, 그 파워는 강력하다!!) 추천으로 전화한 이사업체 사장님의 “일반 이사 하시는 거죠?” 질문에서 나의 험난한 non-포장 이사는 시작되었다. “일반 이사 아니면 뭐가 있나요?” “포장 이사도 있긴 해요. 근데 여긴 다 포장은 직접 하시고 옮기는 것만 업체에 맡기는 일반 이사를 하시니까요”  


일반적이고 평범하고 노멀하고 틀에 박힌 걸 참 좋아하는 나, 모든 소비에 대한 판단은 일단 ‘가성비’를 따지는 데서 출발하는 은근한 짠순이인 나는 듣자 하니 가격도 서너 배는 거뜬히 차이 나겠다,  ‘그래?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랬다고, 미국 왔으면 일반 이사 한 번 해보지 뭐’라는 당찬 포부와 그릇된 자신감으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만큼 험난한 non-포장 이사를 하게 된다.


인생 첫 주택살이!


사실 전에 살던 콘도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보다 괜찮은 콘도를 찾기는 쉽지 않겠다, 그러니 이왕 옮긴다면 싱글 하우스(주택)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주택은 보안 문제도 있고, 잔디 관리도 보통 일이 아니며, 특히 오래된 미국 주택들은 배관을 비롯한 문제가 수시로 발생해서 돈도 많이 들고 힘들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미국에서 집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싱글 하우스에 살아보지도 않고 구매를 하거나 안 하는 결정은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도 손이 많이 가니 2~3년 있다가 하우스로 가는 것도 염두에 뒀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하우스에 살면서 자유롭게 뛰어다녀야 하는 적기가 아닐까 싶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집안을 누비는 중이다. “뛰지 마” 소리가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내 ‘아, 이제 아랫집이 없으니 그럴 필요 없지? 이러려고 이사했지’ 다시 눌러 담는다.


뒷마당에는 트램폴린을 설치할 계획이다. 아직은 공만 들고나가도 신나는 눈치지만. 포치에는 의자와 티테이블을 두고,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봐야겠다. 혼자 책을 보면서 광합성을 하는 것도 좋겠다.


3개의 방 중 2개는 아이들 차지에 침실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의 책상이 자리를 잡은 건 이전 집에서와 마찬가지지만, 작고 소중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오래된 미국 집들의 부엌 옆에 있는 일명 ‘breakfast room’인데 내 손으로 조립한 IKEA 책상까지 들여놓으니 이보다 아늑할 수가!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됐던 시절만큼, 아니 그때보다 설렌다.


세상에 다 좋은 건 없다는 말은 진리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벌레(개미 친구들)도 만났다. 뜨악했지만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개미 약을 사 왔다. 개미들아, 부디 오래 머물지는 말고 떠나 주렴!  




모쪼록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기쁨과 행복, 평화가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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