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일기] 서른여덟, 사교 파티 데뷔에 딱 좋은 나이

미국 학부모 첫 갈라 파티 참석 후기

by 하우영

이달 초, 아이들 학교에서 주최하는 갈라(gala) 파티에 다녀왔다.


갈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가을, 학교가 개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연중 다양한 행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손꼽히게 크고 중요한 행사라 그런지 반년도 더 남은 시점에 이미 공지가 올라왔다. 당시 메시지를 보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갈라? 김연아 갈라쇼 할 때 그 갈라 말이야?”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갈라의 실체는 점점 구체화됐다. 옥션에 필요한 경품 기부와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나도 본격적으로 참석 여부를 고민하게 되었다. 파티라고는 아이 친구 생일파티나 가본 게 전부인 토종 한국인 부부에게, 그것도 한껏 차려입고 가는 사교 파티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자리처럼 느껴졌다. 원래도 꾸미고 치장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고, 미국에 이민 온 지난 2년 반 동안 내 패션은 레깅스, 트레이닝복, 잘 입으면 청바지 수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는 얼굴은 제법 생겼지만 아직 아주 가깝거나 편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가볍게 인사만 나눴던 교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갈라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자는 제안이었다. 깊은 교류가 있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인상이 좋아서 언젠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부부였기에 반가웠다. ‘어차피 다닐 학교, 열심히 다니자’는 게 나의 기본 기조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그냥 아이의 학교라기보단 나의 학교 생활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솔깃한 제안을 거절할 만큼 내가 찌질하거나 찐따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나는 갈라에 가기로 했다.


막상 가기로 마음먹고 나니, 갈라가 단순한 파티가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실감됐다. 이 행사의 핵심은 바로 펀드레이징. 입장권은 인당 $250짜리 유료 티켓이고, 원한다면 테이블 단위로 예약도 가능하다. 교장 선생님의 스피치, 공연, 댄스타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지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옥션이다. 이를 위한 기부는 수개월 전부터 이루어지는데, 학부모들이 소소한 물품을 모아 만든 경품 바구니부터 호텔 숙박권, 스포츠 경기 티켓까지 꽤 다양한 품목이 출품된다.


‘모든 게 완벽했다’ 거나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전반적인 소회는 ‘만족스러웠다’는 쪽에 가깝다.


무엇보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중요한 행사에 직접 참석하고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이렇게 용감하고 경험을 중시하는 인간이었는지.


물론 몸매도 안 되고 용기도 부족해 실루엣이 드러나는 드레스나 등이 파인 옷은 감히 시도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스커트를 입고 귀걸이를 하고, 정장을 입은 남편과 함께 밤 외출을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꽤 근사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술을 곁들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보낸 시간도 좋았다. 그날 이후 티타임 약속이 생기고, 아이들 플레이데이트도 이어지면서 인연이 조금씩 이어지는 점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옥션을 통해 1학년 아이들의 공동 작품인 벤치를 낙찰받아 아드님의 소원을 이뤄주고, 동시에 학교에 기부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뜻깊었다. 덕분에 이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꽃도 피울 수 있었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험을 훌쩍 뛰어넘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갈라 참석이 단순한 파티 참여를 넘어 내게 꽤 큰 전환점이 된 듯하다.


다음번엔 조금 더 과감한 드레스를 시도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용기가 자라나는 걸 느끼며,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이곳에 스며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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