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축복

칠순을 맞은, 사랑하는 아빠에게

by 하우영

오늘, 한국 시간으로 아빠가 칠순을 맞으셨다.

숫자로서의 나이에 누구보다 의미를 두지 않는 아빠지만, 그래도 ‘칠순’을 맞아 한동안 방치해 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열어본다. 이미 아빠에 관한 글을 두 편이나 올린 적 있지만, 소재가 마치 화수분처럼 샘솟는, ‘볼매’(표현이 조금 올드하긴 하지만, 하핫)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한 번 더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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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개룡남’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많은 아저씨들이 그러했듯,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했던 할머니의 ‘공부 잘하는, 자랑스러운 장남’으로 자랐다. 명문고와 명문대를 거쳐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기업 차장으로 입사했지만, 시작은 거의 무일푼… 아니, 회사 전세대금 대출까지 짊어진 마이너스였다. 너무 흔해 오히려 지루할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40대 이후 커리어의 방향이 크게 전환되면서 아빠의 삶은 한층 다이내믹해졌고,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베이비부머의 모습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물론 오늘은 아빠의 커리어를 논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니 이쯤에서 멈추려 한다.

다만 어려웠던 시절을 지긋지긋한 기억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식들이 본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고 해서 공치사하거나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빠는 참 ‘나은’ 개룡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는 원조 딸바보다.

요즘은 ‘하나만 낳을 거면 딸’이 대세지만,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다. 할머니 역시 손자를 간절히 바라셨고, 마침내 태어난 사촌 남동생을 대놓고 편애하시기도 했다. 만약 ‘나는 딸 둘이 좋다’며 단단히 방파제가 되어준 아빠가 아니었다면, 할머니의 차별이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어디만 가면 “우리 딸들 예쁘지?”라며 마구 자랑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 본인 것은 안 사면서도 딸들에게는 비싼 원피스, 명품 가방을 사주고, 지금도 함께 외출하면 “애들도, 가방도 다 나한테 맡기고 편하게 다녀”라며 등을 떠미는 우리 아빠.

때때로 아이들의 ‘무수리’ 역할을 하다 보면, ‘우리 아빠가 나를 얼마나 공주처럼 키워줬는데 이 녀석들이 감히…’라며 구시렁거리다가도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튀김류(예전만큼 많이 먹지는 않지만), 티라미수, 음악(트로트부터 클래식까지 장르 불문. 다만 가사를 잘 몰라 대충 흥얼거리시는 경향이 있는데, 덕분에 최근 다민이가 ‘롤로핑’이라는 별명을 붙여드림), 쇼핑(특히 옷), 새벽 공부 시간, 새로 알게 된 것 가족들에게 알려주기, 메모하기 등

싫어하는 것: 시끄러운 것, 기다리는 행위,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는 무심하고 무지한) 전문직 종사자 등


아빠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게 유난히 많고 분명한 편이다. 예전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보다 아빠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나오거나, 식당에서 맛있는 티라미수를 먹을 때 아빠가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아빠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부모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표현하는 건 꽤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사랑하는 아빠,

아빠가 나의 아빠라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고,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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