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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Sep 02. 2020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남편은 나와 비슷한 점도 꽤 있지만(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 취향 같은 것들), 너무나 당연하게도 때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다. 다른 측면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날이 샐 지경인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엄청난 인정 욕구와 비슷한 맥락에서의 명예욕? 아무튼 그런 남편의 원래 이상형은 현모양처지만, 집에 잠자코 있으면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와이프를 맞이하면서 그는 노선을 변경했다. ‘와이프를 큰 사람으로 만들자!’

맙소사! 학창 시절 부모님도 나에게 ‘공부하라’ 잔소리 한 번 안 했건만 남편은 굵은 소리 잔소리를 서슴없이 해댄다. 요지는 ‘큰 사람이 돼야 한다,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 세상을 잡아먹겠다는 각오로 치열하게 살자’. (믿을 수 없겠지만 ‘세상을 잡아먹겠다는 각오’ 같은 말을 수시로 구어체로 내뱉는다, 위대한 내 남편은 하하)  




아무튼 엊그제도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참지 못하고 금세 포기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럼 쓰냐?”며 혀를 찼다. “나는 큰 사람 되고 싶지 않아. 그냥 작은 사람으로 살 거야”하고 말았지만, 솔직히 저런 적극적인 태도, 에너지와 열정은 내가 남편에게서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면모이다 (나에게 강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아니, 시엄마는 아들을 어떻게 키운 거지?’ 싶기도 하고. ‘엄마가 그렇게 키운 게 아니라, 내가 알아서 큰 거야’라는 남편의 주장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지만.

나는 집에서 남편이 번 돈을 쓰고, 육아와 살림을 하고 문화센터를 다니는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대단한 돈을 벌거나 명예를 누리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냥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 며느리 외에 사회인 ‘하우영’으로서 어떤 생산적인 과업을 수행하고 output을 내는 행위, 그 과정에서 맺는 관계와 interaction이 좋달까? 그래서 남편과 살면서 가끔은 ‘나는 왜 남편 같은 큰 꿈이나 목표가 없을까?’ ‘딱히 부와 명예를 좇는 것도 아니면서 잠자코 집에만 있지도 못할 건 또 뭔가? 오롯이 자아실현만을 위한 사회생활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한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나에게 ‘양브로의 정신세계’ 유튜브를 보여주면서 “남편보다 네가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가진 거”라는 게 아니겠나?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가운데 남편이 추구하는 건 4단계, ‘성취에의 욕구’이고, 내가 추구하는 건 그 위의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것이다.

오, 일단은 어쩐지 위로가 되는 말이었고, 솔깃하고 반갑다. 그저 남편에 비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고, 열정과 에너지 레벨이 낮고, 큰 포부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알고 보니 드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남들의 인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아실현을 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인가? 글쎄,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나는 ‘작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행복한 것으로? 남편,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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