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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Mar 12. 2021

완벽주의라는 병

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길 꿈꾸는 자의 삶이란

완벽주의는 내가 가진 병 중 하나다.

예전에 누군가 '신입사원들이 자소서에 단점을 쓰라고 하면 꼭 완벽주의라고 쓴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의 의미는 '신입사원들은 자소서에 절대 진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걸 쓰지 않는다'는 거겠지만, 나는 100프로 진심으로 말한다: 내가 가진 이 완벽주의가 정말 싫다.




나는 완벽주의인 동시에 일종의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이다.

일의 결과에 대한 기댓값이 매우 높은 동시에 만사를 내가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랄까.


학창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국영수과사 같은 주요 과목 성적뿐 아니라, 예체능 교과목 성적에도 그렇게 집착을 하곤 했다. (왜 그랬대, 진짜?) 하지만 필기시험이야 그렇다 치고, 사실 예체능 과목의 수행 평가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체육 과목에서 단거리 달리기 기록을 평가했는데 나는 기록을 높이기 위해서 반에서 가장 빠른 친구에게 내 옆에서 같이 달려 달라는 부탁까지 했더랬다. 아, 나는 그렇게 징글징글한 아이였다.


그 이후에도 나는 회사에서도 괜찮은(혹은 잘 나가는) 부서에서 재밌는 일을 하고 싶고, 외국어 공부나 운동 등의 자기 계발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가족, 친구,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도 모자람 없이 꾸리는 내가 생각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의 삶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인간의 삶은 너무 고달파. 나는 다음 생에는 절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 나무로 태어나서 가만히 한 자리에 서 있을래"(나무의 삶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나무들아)라는 말을 해왔다.


그렇지만 솔직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나의 완벽주의가 혐오스럽지 않았다. 자소서에 단점으로 완벽주의를 적는다는 신입사원들과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정말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어'라고 말하면서 내심 나의 완벽주의가 자랑스러운? 그 덕에 내가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지, 이런 느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 삶은 더 이상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남편과 두 아이가 내 삶의 일부, 때로는 전부가 되었는데 이건 그전까지 엄마나 아빠, 여동생이 미치던 영향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이 세 사람은 그야말로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이었다. 수년 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는 정말 많이 내려놓기도 했고, '저들은 절대 내가 아니며 타인이다. 타인이 내 뜻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건 오만이지'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지만, 솔직히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비전도 있고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을, 그것도 열심히, 잘하고 싶고, 아이들도 그냥 대충 편하게 키우는 건 싫고, 아이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최선의 결정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해서 잘 키우고 싶고, 그러려면 다른 사람(특히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단 걸 알면서도 너무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고, 이 와중에 아이 둘 낳고 삼십 대 중반이 지났다고 살찌는 건 용납하지 못해 시간을 쪼개가며 운동하는 나란 사람. 자랑이 아니라, 정말 왜 이렇게 사는 건지, 일단 이렇게 생겨 먹어서 살긴 하는데 참 피곤한 삶이다.


다음 생에는 꼭 나무로 태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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