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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Feb 04. 2023

내 인생의 띵언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듣나요?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말을 하고, 또 듣는다.

그중 많은 말들은 말하는 이의 입에서 나와 듣는 이의 귓가를 스친 후 사라진다.


그런데 또 어떤 말들은 듣는 순간 뇌리에 탁 박혀 10년, 20년, 혹은 30년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인생에도 몇몇 띵언들이 있다.




실수도 실력이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공부를 곧잘 하는 승부욕 강한 아이였던 나는 같은 반의 한 남학생과 경쟁 관계였다. 명확하게 관계를 규정지어 준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니 아마 나 혼자만의 경쟁 관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수학 시험에서 다 아는 문제를 검산을 안 하는 바람에 틀렸고, 결국 그 아이에게 간발의 차로 1등을 내줬다. 모르는 문제도 아니고 아는 문제를 틀렸다는 사실, 그리고 ‘졌다’는 사실에 너무 분하고 속상해서 우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실수도 실력이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초등학교 2학년 짜리에게 하는 말 치고는 좀 냉정하지 않나 싶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수학 시험을 볼 땐 검산을 아주 철저하게 했다지?



살면서 한 번은 돌아간다


말하자면 긴 사연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자퇴한 거였지만, 열일곱 어린 나이에 더 이상 소속된 곳이 없다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꽤나 컸다. 다른 사람의 위로나 응원이 그다지 힘이 되지 않던 그때, 외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너는 이렇게 어릴 때 돌아가니 얼마나 다행이냐?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씀을 할 때 병상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가 끝내 손녀딸이 할아버지의 후배가 되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신 게 늘 아쉽다.



청소는 역치가 낮은 사람이 하는 거다


첫 회사 입사 초기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동기 오빠가 배우자 간의 청소 분담을 놓고 한 말이다. 앞의 두 띵언들과 좀 다른 성격이지만, 재밌고 나름의 통찰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 중 누가 더 청소를 많이 하고 청소에 대한 오너십을 가지게 되는지는 성별이나 경제력이 아닌 ‘더러움에 대한 역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집이 어느 정도 어질러지고 더럽혀졌을 때 역치가 낮아서 못 견디는 사람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순간에도 상대는 아직 집이 그다지 지저분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왜 맨날 나만 청소해? 내가 왜 먼저 청소하라고 지시해야 해?”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거다.


들을 때도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결혼해서 살아보니 그야말로 진리다.




매번 띵언을 내뱉을 수는 없겠지만, 내 모든 말이 허공에 흩뿌려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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