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내가 틀렸겠어? 틀렸을 수도 있다
어학연수 때 'Pronunciation'(발음) 클래스를 수강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th' 발음을 배울 때였습니다. 현지 선생님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th 발음은 'd' 도 아니고 's'도 아니다. 'ð'이고 'θ'로 발음하는 것이다. th발음에 대해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발음을 잘 해도 th 발음을 이상하게 하는 순간 그 사람의 영어 수준이 확 낮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발음에 정말 신경을 쓰고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고서에도, 하나의 실수로 전체의 격을 떨어뜨려버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컷 고민해서 작성했는데, 작은 실수 하나로 '형편없는' 보고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날짜와 요일 실수
8월 17일은 엄연히 월요일인데 "8/17(목)"이라고 떡 하니 적어놓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약 관리자가 날짜가 아니라 요일만 주목하여 보고 지나쳤을 경우('목요일에 예정되었군'), 심각한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주로 기존 작성된 문서를 수정하여 작성할 때 이런 실수들이 생깁니다. 따라서 타 문서를 양식삼아 작성하는 보고서에는 이런 실수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두 배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 개수와 명수, 합계
일반적으로 표로 내용을 정리할 때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입니다. 합계 레코드에 SUM 을 잘못 계산한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말씀드린, 보고서에서의 숫자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런 실수는 보고서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몇 년 전, 행사 참석인원을 리스트 한 후, 맨 앞에 '총00명'이라고 표기를 하였는데 계산을 실수해서 한 명이 틀린 총계였습니다. 부서장님은 꼼꼼히 인원을 세어보셨고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 숫자가 틀렸는데, 다른 부분이 정확하다는 걸 어떻게 신뢰하지? 내가 다 확인해 봐야 하나? 난 이 보고서 전체를 못 믿겠어."
라는 치욕적인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보고서 전체를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3) 오타
30명이 모인 자리에서 빔 프로젝터로 보고서 띄워놓고 발표를 하는데 '고객사와 협의'라고 적혀야 할 부분이 '고객사와 ㅎ벼의'로 떠 있습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오타이지만, 이런 경우가 실제로 발생합니다.
발표를 듣는 30명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요? 보고자의 평소 평판이 좋다면, '저런 실수를 할 때도 있군'이라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얼마나 대충 썼으면 저런 것도 확인을 안 했을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사유야 어찌되었건 그 말은 오해가 아니라 맞는 말입니다)
내가 만든 음식 맛을 내가 제대로 못 느끼는 것처럼, 내가 쓴 보고서의 오탈자도 작성자인 내가 직접 보았을 때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주변 동료들에게 크로스체크를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폰트 깨짐
본사 컨퍼런스 룸에서 발표할 자료들을 열심히 준비하여 이메일로 전송해 놓았는데, 당일 발표 30분 전, 현장에서 다운로드 받아보니 글씨가 다 깨져 나옵니다. 현장 PC에 설치되지 않은 폰트로 자료를 작성한 것입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폰트를 다운로드 받으려고 인터넷에 접속해 보지만 현장PC의 속도가 엄청 느리고, 다른 발표자들이 자기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뒤에서 기다리고 있고... 얼마나 땀 나는 이야기입니까?
현장 발표 PC에 내가 사용하는 폰트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행사 주관자도 PC의 폰트까지 파악하고 있지는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능하면 기본 글씨체를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5) 복사해 온 양식의 잔재(?)들
주로 PPT 문서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합니다. A 차장은 결산대회 자료 작성을 위해 타 사업부 PPT 자료를 입수해 왔습니다. 며칠 밤을 야근하며 작성해서 당일 슬라이드 쇼를 띄웠는데 하단에 타 사업부 이름이 떡 하니 박혀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슬라이드 마스터였습니다. 페이지 본문만 수정했지, 본문과 무관하게 적용되어 있는 마스터 내용 변경을 놓친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사업부 소속인가?" 라는 임원의 불만어린 책망을 듣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받아온 양식 문서에 슬라이드 노트 내용이 적혀있지는 않은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슬라이드 노트는 보고받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슬라이드 쇼를 해제했을 경우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보고서를 갖다 썼구나'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발표자에게 결코 플러스 요인이 될 수는 없기에 이 부분도 꼭 확인하실 것을 권합니다.
회사에서 '디테일의 중요성'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디테일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일반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부터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 아무리 납기가 촉박하다 할 지라도, 필요하다면 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설명드린 주제는 '잘 하는 것이 당연하고 실수하면 전체가 망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나도 대형 사고를 칠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