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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Dec 18. 2023

사진보다 너희들이 좋아서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던 시간



어느날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대학 후배에게 전화 연락을 받았다. 자신이 일하는 아동 복지센터에 주말마다 와서 중고생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선뜻 알겠다고 했다. 주말에 특별히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사진을 통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늘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소는 집에서 꽤 멀었다. 그때는 차도 없어서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1시간 50분 정도를 가야 했다. 취약계층에 속한 청소년들을 돌봐주는 곳이었다. 건물 2층,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에는 토요일을 맞아 모인 30여명의 아이들로 북적였다. 바쁘게 나를 맞이한 후배의 "선생님 오셨다."는 말에 열 명 정도가 모였는데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양했다.  


나 역시 첫 날은 계획성 없이 방문한 탓에 그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시설에서 갖고 있는 장비라곤 똑딱이 카메라 두 대가 전부였다. 실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이론을 가르치기보다는 내가 갖고 온 DSLR로 사진을 찍은 후 LCD 화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비슷하게 찍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리저리 찍기 시작했다. 결과물을 보니 대부분 사진에 대해 문외한임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 사진 찍어본 적이 있니?"


한 명 빼고는 고개를 저었다. 예상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구도를 가르쳐 주고, 꽃 한송이를 이리 저리 찍는 연습을 했다. 아이들은 열 명이고 장비는 내가 가진 DSLR과 똑닥이 2개라 한 번씩 찍어보기에도 분주했다. 열악한 여건에 잘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즐거웠나보다. 자기들이 찍은 사진은 보지도 않고 함박 웃음을 지은 채 재미있었다며 센터로 돌아왔다. 나도 하루만에 그들과 꽤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음 시간에도 가르칠 것을 구상해서 갔지만, 내 계획대로는 잘 되지 않았고 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셔터를 한 번도 누르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어했다.  





시간이 지나자 내가 그곳에 가는 목적이 사진 수업이라는 사실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아이들은 내가 오면 밖으로 나가 놀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동네 인근을 다니기도 했고, 조금 먼 공원을 가기도 했다.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 한강, 하늘 공원, 대학로까지 가보기도 했다. 출사라기보다는 나들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인솔해서 이곳 저곳들을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시설에서 약간의 교통비를 주었지만 턱없이 부족했기에, 소소하게 지갑을 열어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이나 길거리 간식들을 사주기도 했다. 결국 내가 방문하는 토요일은 명목상으로만 사진 수업이었을 뿐, 실제로는 소풍, 나들이 시간으로 운영되었다. 사진은 대부분 내가 찍었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지은 사진들을 메모리카드에 담았고 인화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진 수업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제각각 어려움과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결손 가정 자녀들이고, 정신적으로 조금 어려움을 겪는 친구도 있었다. 가끔씩 그 친구들의 돌출 행동을 통해 그런 상처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이 몹시 제한적이기도 했고, 혹여나 어쭙잖은 말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사진 선생님이라는 역할 외에는 깊게 다가가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지치기도 했다. 어떤 것을 한 두 번 하는 것은 쉽지만 우직하게 지속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서 2시간정도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도 들었고, 왕복 4시간 거리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에게 사진수업을 부탁했던 대학 후배는 다른 복지재단으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나는 계속 그 친구들을 찾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결국 나도 업무가 바빠져 주말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더이상은 주말에 그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당분간은 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직원분께 말씀드렸고, 결국 그것이 마지막 연락이 되었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꺼내어 본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꿈이 많았다.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척박함 속을 뚫고 어떤 일을 해보겠다며 상세히 설명해주는 당찬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의 사진을 이곳에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수업을 위해 당시 스냅으로 찍었던 풍경들이, 애써 독자적으로 출사를 나가 찍은 사진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느낀다.  


2009, 응암동


그런 사진들을 보노라면 함께했던 장면들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예정된 출사는 나가지 못하고 동네 책방을 찾아 함께 이야기 나누던 기억, 왁자지껄 웃으며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의 숫자를 세느라 나 홀로 허둥지둥대던 기억, 따사로운 호수공원을 거닐며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던 기억....  


2009, 일산호수공원


어떤 때는 "얘들아 요렇게 찍으니 이런 사진이 나오기도 하네" 라며 즉석에서 배운 촬영 방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사람이었지만, 실상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사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친구들의 밝았던 모습이 내 사진 감성을 더 일깨워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사진들보다 너희들이 좋았다. 당시에는 그게 이토록 좋은 기억이 될 지 몰랐다. 사진 실력도 별로 없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들은 그렇게 좋다며 따라와주었다. 내 인생에 이런 시간들이 하나의 선명함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좀 더 나눠주지 못해 미안하다. 냉정히 말해 당시는 나 자신 챙기기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열 명 남짓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억지스레 나눠주려고 했던 몸짓 가운데 오히려 큰 힘을 받았음을 느낀다.


2009, 선유도공원


1년 후, 그 아이들의 대장 역할을 했던 여고생이 졸업을 하고 이제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러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 친구의 삶 깊은 곳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으나 대견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칭찬하고 격려를 해 주었다. 




아래 사진은 당시 만나 찍어준 마지막 사진이다. 냉혹하고 무정한 시간들은 그 친구들의 이름마저 대부분 잊게 만들었지만, 결코 만나지 못했을 우리들을 이어주었던 사진이라는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들의 녹록치 않았을 일상 속에 한 번쯤 떠올릴만한 존재였기를 바란다.


2011, 한강 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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