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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Dec 11. 2023

나를 담아놓은 사진들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진



그토록  아프고 괴롭던 시절도 15년이 되어간다.


회사는 나를 매일같이 소모시켰고 부모님의 사업은 끝없이 무너지고 있었으며, 나 자신도 불투명한 미래의 무게감에 하루하루 침잠해갔다.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것 조차 너무나 힘겨웠다. 퇴근길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도보 10분인데, 30분이 걸려서야 현관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한 걸음 후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아 다음 걸음을 어렵게 내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눈물이 났다.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생각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가 되었다.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원망과 서러움이 담겨있던 흐름 속에 빠지지 않는 단어는 '터널' 이었다. 이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끝이 있기는 한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의 마지막 자락에 대한 상상도 잘 되지 않았다. 외로웠다. 누군가를 붙들고 크게 울음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람도 곁에 없었다.


그 때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유일한 수단은 사진이었다. 주말이 되면 본능처럼 카메라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로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원래의 아픔들은 잠시나마 잊혀졌다.


그러다 어느날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찍은 나무, 내가 찍은 꽃, 내가 찍은 가로등이 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2010, 정동진


사진 속의 나는 고독하고 외로웠다. 찍어놓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가엾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소가 지어졌다. 누구도 공감해주지 못하던 나를, 내가 찍은 사진들이 나와 시선을 맞추며 대화를 나눠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들지, 외롭지, 울고 있구나...


어느 날, 나에게 사진에 있어 스승이나 다름없는 선배님 한 분이 당시 사진들을 보시며 '무엇이든 둘 이상을 놓고 찍어보면 어떨까? 하나보다는 둘이 낫지.' 라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었지만 그때 내게 가장 자신있었던 구도는 '혼자' 였고, 사진들의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의 것들을 찍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2010, 우음도


사진 '실력'이라는 말이 이제는 의미도 없고 듣기에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그 1~2년의 시간동안 내 감각과 시선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힘들었지만 사진찍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남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던 내가 그 당시만큼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동호회 사이트에 포스팅도 하지 않았다. 내 사진을 내가 보고, 위로를 얻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나만의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1, 남양주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었다. 물론 많은 배움들은 누군가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실력을 늘리는 지름길이다. (이 부분은 다음 번에 별도로 이야기하기 원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사진과 같은 것은 결국 창조의 활동이고 내 모습과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가 프레임 속에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취향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사진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좋아다고 말하는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경지에 오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느끼지만, 나는 그런 실력도 없는 아마추어 중 아마추어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소위 '법칙'으로 말하는 많은 것들이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황금비율? 노출? 최적의 렌즈? 사실상 이런 교과서적인 요소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거칠게 요동치는 마음들과 싸우는 가운데 내게 보이는 모든 피사체 속에서 동일한 정서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주저없이 셔터를 눌렀다. 길을 걷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풍경을 발견하면 예정된 길을 크게 돌아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차를 몰고 가다가도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 길가에 세워놓고 나와 그 대상에 다가갔다. 사진 속의 나는 쓰러져 있기도 했고, 포효하기도 했으며, 울며 춤추기도 했다. 그때만큼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프레임에 담아낼 재주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운 적은 없었다.

 

2010, 한강 둔치



그런 사진들을 찍다 보니 자연스레 나만의 스타일도 형성되어갔다. 나는 심도가 얕은 사진을 주로 찍게 되었고, 렌즈들도 단렌즈만을 챙기게 되었다. 아픔의 시간이 끝나고, 구도나 촬영에 조금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 개의 렌즈만 들고 나가야 한다면 50mm에 1.2 조리개를 가진 캐논 렌즈를 선택한다.


그러다보니 팬 포커싱이라 부르는, 심도가 깊은 사진 촬영은 나에게 좀 어렵다. 실제로 이런 사진들이 난이도가 높다. 피사체 하나만 강조하는 사진은 어렵지 않으나 프레임 내 모든 요소들을 드러내면서 강조점을 구별하고 구도를 조정하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은 나에게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들을 갖출 수는 없다. 그리고 이만큼 시간도 흘러 카메라에 손이 잘 가지 않는 상황도 찾아왔다. 내가 그 기간들을 통해 하나의 스타일과 시선이라도 얻어내었는 사실이 감사하고, 가끔 가족들과 외출할 때 아이들의 장난스런 모습을 얕은 심도로 잘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또한 감사하다.


나는 지금 사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그 어떤 취미나 배움들도 좋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과물들을 연습해 보시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분야에서 뛰어나지 않다. 오히려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내게 즐거움이고 위로이다.


당신에게도 당신의 손에 잡은 그 무엇이 이런 선물들을 주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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