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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Apr 14. 2019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2)

요시야 왕과 선지자 예레미야

 앗수르의 멸망으로 인해 유다는 속국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므낫세 왕의 아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고, 성인이 될 무렵 유다를 총체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가 이루어놓은 개혁을 므낫세는 뒤엎었고, 요시야는 그것을 다시 일으킵니다. 때마침 성전을 수리하다가 신명기로 추정되는 율법서가 발견되고 그 내용을 읽은 요시야 왕은 충격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나라는 멸망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방의 양식들을 흔적도 없이 제거했고, 율법대로 살기를 백성들과 함께 결단했으며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개혁은 멸망한 북왕국에까지 뻗어갔습니다.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서는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것이다"는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라는 선지자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동부에 있는 동네인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초기 행적은 전혀 알 길이 없고, 그가 갓 소년 티를 벗었을 때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무척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예레미야 1:6~7, 공동번역)


 선지자 초기 시절, 예레미야는 이방 종교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가 주목한 이스라엘의 죄는 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민족과 비교해도 이런 배교를 행한 나라는 없었고, 자신들의 하나님을 이토록 철저히 버린 경우는 없었습니다. 호세아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이스라엘을 '음녀'라고 선언합니다.


 지중해의 섬나라들에 건너가 보아라. 케달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아라.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를.
 어떤 민족이 섬겨오던 신을 바꾸어 신도 아닌 것을 섬기는 일이 있더냐? 그런데 내 백성은 영광스럽게 모실 나를 버리고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을 잡았다.
 하늘도 놀랄 일이다. 기가 막혀 몸서리칠 일이다. 이는 내 말이니, 잘 들어라.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 (예레미야 2:10~13, 공동번역)


 이 땅은 부정을 타서 소나기가 멎고, 봄비도 내리지 않게 되었다. 이마가 뻔뻔스런 창녀처럼, 너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금도 나를 아비라고 부르기도 하고 젊은 날의 애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아무렴, 끝없이 화를 내시지는 않을 거야, 언제까지나 진노하시지는 않을 거야.' 이런 말을 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예레미야 3:3~5, 공동번역)


 지금까지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기만 했지, 그것을 경험하지는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모든 멸망의 과정들을 최후까지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예언은 피를 토하는 선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별명이 괜히 눈물의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죽음의 위협이 그를 따라다녔고, 매국노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총 세 명의 왕을 지켜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시간부터 살펴본 요시야,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즉위하자마자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은 생략),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그들입니다.

예레미야와 유다의 마지막 왕들


 일단 위의 그림을 한 번 주목하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 이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그려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통치에 가장 근접했던 요시아 왕을 시작으로 두 악한 왕을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말지요. 우선 첫 왕인 요시야 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 그 한계  


 요시야 왕의 개혁은 분명 놀랄만한 것이었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몰락한 역사를 지켜보았을 때 눈물겨울 정도의 분투였습니다. 분명 예레미야는 그 개혁을 지지했지만, 한계점도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성전 앞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이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 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려내올 때, 내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라고 한 번이라도 시킨 일이 있더냐? 나는 내 말을 들으라고만 하였다. 그래야 내가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잘되려거든 내가 명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듣기는커녕 제멋대로 악한 생각에 끌려 나에게 등을 돌리고 나를 외면하였다.(예레미야 7:4~24, 공동번역)


성전 앞에서 설교하는 예레미야 (예레미야 7장)


 이 당시의 분위기를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불량 학생들이 가득한 한 고등학교에 기독교 재단이 들어왔습니다. 이사장과 교장은 적극적으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복지를 갖추며, 학교를 미션스쿨로 만들었습니다. 교사들은 전원 기독교 신자로 교체되었습니다. 유명한 찬양팀을 섭외하여 매주 강당에서 예배와 콘서트를 열었고 수업은 늘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여전히 비행을 일삼을 뿐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에 맞춰주는 찬양팀의 콘서트에서는 춤추고 뛰며 열광했습니다. 학생들의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겉모습만 변한 것이지요.


 예레미야는 개혁 분위기로 뒤덮인 유다 사회가 이와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전 안에 짙게 깔린 커다란 덩어리의 분향 연기만 일으키고 수많은 예배자들로 인한 혼잡만 있을 뿐, 참된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악은 계속되었고(5:23~29), 성직자는 사람들의 비위에 맞춰 행동했으며(5:30~31), 참된 회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가장 큰 오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성직자의 말을 순진하게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레미야는, 유다를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요시야의 개혁 이상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예레미야가 느낀 요시야의 개혁을 '히드라의 머리만 자르는 수준'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선지자가 보기에도 그 개혁은 -정말 필요한 것이었지만- 허약한 잎들과 가지만 잘랐을 뿐 줄기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와 절기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조차 무시되던 악습이 다행히 개혁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공예배는 1순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만 준수한다고 해서 손을 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핵심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하는 백성들만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심의 회개를 요청합니다. 선지자는 이것을 '마음의 할례'로 표현합니다.


 이제 나 야훼가 유다 국민, 예루살렘시민에게 말한다.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땅을 새로 갈아엎고 심어라.
 유다 국민들아, 예루살렘 시민들아, 할례를 받아 나에게 몸을 바쳐라. 마음에 수술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사악한 행실을 보고 화를 내어 불처럼 너희를 태우리니, 그 불을 꺼줄 사람이 없으리라. (예레미야 4:3~4, 공동번역)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있어 요시야 왕은 분명한 하나님의 선한 도구였으며,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통치활동에 혹평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북방의 벧엘에까지 개혁의 손길을 뻗쳤을 때 선지자는 그 행동을 예찬했으며, 멸망한 사마리아의 회복을 예언하는 영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죽음 


 이러한 요시야 왕의 죽음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가장 두렵고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앗수르의 멸망 이후 무주공산이 된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애굽이었습니다. 파라오는 고대 제국을 재건하려는 야망을 실천에 옮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유다의 종주국을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교체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B.C 609년, 애굽의 느고가 바벨론으로 출병할 때 요시야 왕은 므깃도의 통로에서 그를 방해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 전투에서 요시야는 전사하고 맙니다(열왕기하 23:28~30). 유다의 독립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급히 왕위에 올랐지만 파라오는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제인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힙니다. 그리고 유다에는 무거운 조공이 지워졌습니다. 애굽의 속국이 된 것이지요.


 여호야김은 모든 면에서 그의 아버지를 닮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요시야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여호야김과 싸워야 했습니다. 기울어지는 유다의 운명과 함께 선지자의 예언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3) 에 이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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