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by 만티스

장례식 발인을 마칠 때까지도, 그 사람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제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 사람의 부재 속에서야 비로소 내 주변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오피스텔 1층을 지나 출근할 때마다 몇 달 전부터 공사를 하던 상가는 이제 간판을 걸고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앞으론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바쁘게 카페로 향했다. 무료한 표정으로 외진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보였다. 차들이 혼잡하게 지나는 소리도 더 크고 생동감 있게 들렸다. 그러나 회사만은 달랐다. 책상도, 복도도, 비상계단도, 회의실도, 탕비실도, 사내의 정적마저 회사 사람들과 함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은 퇴근 후 태훈이에게 술이 아닌 밥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입맛이 없다고 했다. 태훈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럼 그냥 같이 걷자고 했다. 이번엔 내가 태훈이가 사는 곳 근처로 가기로 했다. 11월 밤하늘은 깊고 투명했다. 낙엽이 나부끼는 거리를 태훈이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맞는 청량한 밤공기는 오랜만에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태훈이가 사는 곳은 나와 차로 20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바닷가 근처이기도 했으며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중 큰 공원으로 들어갔다. 백열 가로등 외에 곳곳마다 있는 나무나 작게 조성해 놓은 정원 나뭇가지에 알록달록한 조명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쪽엔 분수가 나오는 호수가 있었다. 사람들도 꽤 많았다. 태훈이는 물고기 외에도 거북이나 자라도 있다며 나를 호수가로 이끌었다. 조명덕에 밤에도 자라와 거북이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신기해하며 쭈그려 앉아 호수 앞 틈이 넓게 난 난간 너머로 발 밑쯤 지나고 있는 거북이 머리에 손을 대보려 하자 태훈이가 손을 탁 치며 자라라 위험하다 말했다. 내가 믿지 않자 태훈이는 진짜라며 자라가 얼마나 위험한지 남자 한 명이 자라에게 오줌을 싸다 자라에게 물려 불구가 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태훈이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나 우리는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위적으로 조그맣게 조성해 놓은 연못이 있었고 개구리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11월인데 아직 개구리가 있냐고 묻자 태훈이는 봄 여름에 보통 있긴 한데 하고 같이 보자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휴대폰 불빛으로 비추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 난간 밖으로 나와있었다. 신기해하며 쳐다보다 태훈이에게 잡아달라 하자 태훈이는 쭈그려 앉아 멈춰있던 손으로 덥석 청개구리를 잡아 내게 보여줬다.


"우와! 저도 잡아볼래요!"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청개구리가 빠져나가지 않게 태훈이가 잡고 있는 손을 감싸며 청개구리를 잡아 손등에 올렸다. 가만히 잠시 있다가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태훈이와 나는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웃고 밖에서 걷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좋아하는 걸 보니 다행이네요." 태훈이가 말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태훈이를 쳐다보며 웃고는 손을 빼버렸다. 태훈이는 빼버린 손을 다시 잡고 말했다, "제가 많이 좋아해요."


"아니요. 태훈 씨는 절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거예요."


"인간적으로도 좋아하지만 상연 씨 이성적으로 좋아해요."


"태훈 씨가 절 왜 좋아해요?"


"상연 씨 얼마나 예쁘고 똑똑해요. 사랑스럽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태훈이는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그거 착각이에요. 태훈 씨는 그냥 저한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거고 저한테 그런 감정이 있더라도 다른 여자애들처럼 갖는 호기심인 거예요."


"아니요. 호기심이 아니라..."


"태훈 씨 여자친구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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