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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호 Jul 20. 2016

어느 오일장의 추억

어느 오일장의 추억

       - 고난의 기억도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기억이란 말보다 추억이란 말을 즐겨 쓰는 것 같다. 영어에는 두 용어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다. 그냥 memory 하면 된다. 서양사람들은 보다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고 우리는 좀 더 감성적으로 민감해서 분위기를 좀 더 타는지도 모른다. 흔히 추억이라 말할 때는 이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고 특별한 기억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감정의 표현을 내재하고 있다. 사실은 광의의 기억에는 추억도 포함되며 오히려 기억이란 말이 더 포괄적인 개념일 게다. 인지심리학자들은 명시적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크게 구분하기도 한단다. 쉽게 풀이하면 명시적 기억이란 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이전의 경험이나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말하며 그 이외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얻은 무의식적인 기억들을 암묵적 기억이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말하는 추억은 암묵적 기억의 범주에 속할 것 같다.

        

          영어 속담에 시간은 날아가고 돌아오지 않으며, 추억은 머물고 떠나지 않는다 < Time flies and never returns; Memory stays and never departs. > 라 하고, 로마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들은 기억하기에 달콤하다  < Things that  were hard to bear are sweet to remember > 라 하였으며, 미국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추억이란 만남의 한 유형이다 < Memory is a sort of meeting. >라고 약간은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였지만, 미국 작가 마크 트윈(Mark Twain)은 진실로 말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게 없다 < If you tell the truth you don’t have to remember anything. >라든가 린컨은 사람들이 성공한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을 만큼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 No man has a good enough memory to make a successful liar. >라는 등 현재에만 집착하는 듯하고 별로 우리네 만큼 가슴에 와 닿는 추억거리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추억은 세태에 찌든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준다.

         

           지난 한국 전쟁은 좁은 땅에서 아주 치열하고 참혹하게 벌어졌다. 옛날 시골에서 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 되면 장터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사람들의 마음도 괜히 야외로 소풍 가는 어린이들 마냥 즐겁게 들뜬다. 거래가 끝나면 때로는 서커스나 신파극들도 이곳에서 열렸다. 장터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교 시 언제나 자연스럽게 장터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모든 곡식이며 옷가지와 각종 생필품들과 학용품들 그리고 소와 돼지를 포함한 가축도 이곳에서 거래되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책을 취급하는 이동식 종합문구 서점엔 장날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들르는 한 시골소년이 있었다. 마음씨 착한 문구점 주인아저씨는 이 시골소년이 만화책을 앉아서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노점 한쪽 모퉁이에 낡고 두꺼운 마분지 상자 조각도 마련해 주셨다. 그날도 소년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책보자기를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그 자리에 앉아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왠 낯선 소녀가 그곳에 와서는 소년의 옆에 쪼그리고 앉더니 그녀도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차림새가 시골소녀 같지 않게 깔끔한 모습에 나이는 소년보다 서너 살 위로 보였다.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난 뒤 소년이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소녀 뒤로 돌아 건너편으로 가서 소녀를 마분지 조각 위쪽으로 살짝 밀치며 쪼그리고 앉았다. “누나가 저기 앉아서 책 봐. “ “ 고맙다. “  얼굴빛이 약간 붉그레지는 듯하던 소녀는 무릎이 너무 아픈 듯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바꿔 한 동안 책을 더 뒤적였다. 얼마 후 소년이 책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소녀도 따라 일어났다.

         “ 너 어느 마을에 사니? “

         “ 바로 거렁(물이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 건너 저~쪽 “

         “ 학교 공부 재미있니? ”

         “ 공부를 재미로 하나? 그냥 해야 됀다카이 하는 거제. ”  

        둘은 누가 같이 걸어가자고 제안한 적도 없지만 소년이 산다는 마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소녀의 상냥한 서울 말씨는 소년의 가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서울 말씨 쓰는 사람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좋은 곳에 사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누난 어데 사노? “

        “ - - - - - - - “

        “시냇가 좀 구경시켜 줄래? ”

        “그래, 같이 가자 마 “

        큰 전쟁이 훑고 지나간 들판에도 곡식은 무르익어 가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줄지어 피고 있었다.

        “너네 집이 저쪽에 보이는 저 마을이니?” 소년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 아빠도 모두 살아 계시니?”

        “그라마 ~ 할배, 할매, 어매, 아부지, 누나들 동생들 대식구인 거라. “

       소년은 신나게 대답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 수가 많은 것이 자랑스러웠다.

        “넌, 좋겠다..…..”

        “ - - - - - - - -"

          시냇가에 도달하자 둘은 자갈돌을 주워 물에 던져 넣기도 하고 피라미를 잡는 흉내도 내며 놀다가 어느덧 해가 늬엇늬엇 서산에 넘어갈 무렵 소년은 돌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고 소녀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마을 장터에서 [두 남매]라는 신파극이 그다음 날부터 3일간 공연한다는 예기를 누나로부터 들은 것은 저녁 밥상머리에서였다.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란 두 남매의 예기라는 둥, 오빠가 사랑하는 여동생의 원수를 갚는 예기라는 둥, 말이 많았지만 결국은 너무너무 재미있을 거라는 예기였다. 아이들은 공짜라는 예기도 덧붙였다. 누나들이 마지막 날 가보기로 서로 약속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공연 마지막 날 누나들 틈에 끼어서 신파극을 보는 중에 어린 여동생 주인공이 무대 위로 나오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견우가 직녀를 만났듯이 이미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내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았다. 그날 소년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엄청 울었다. 지난 전쟁으로 이 땅에는 많은 고아들이 생겨나서 해외로 입양되어 낯선 땅으로 떠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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