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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호 Sep 28. 2016

그해 겨울은

그해 겨울은


박 호

  

극지 툰드라로부터 발원한 세찬 바람이 시베리아 동토를 일기가성으로 휘몰아 아무르 강변 수천만 년 전 지구 상에서 사라진 거대한 공룡들의 땅에 다다르면 어느덧 체감온도 영하 사십도 얼음 칼날이 가슴을 에는 듯 머리를 마비시키고 온통 하얗게 쌓인 눈으로 얼어붙은 대륙의 하늘과 땅과 강물에 마지막 이별의 장엄한 레퀴엠이 울려 퍼지고 지하철 전동차 3대 크기의 몸통을 가졌지만 가마득히 높은 곳에 작은 머리가 가여운 짐승들은 너무 큰 몸집에 한 개의 좁은 환기통 목으로 숨이 벅차서 오장육부에 생긴 상처를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몸통은 작지만 머리가 큰 생명체에게 제자리를 물려주고 떠난 머리가 작은 자가 머리만 큰 자에게 먼저 온 자가 뒤에 간 자에게 남기고 간 흔적이 뼈에 사무치게 각인된 눈물의 편지 슬픈 유서가 그곳에 있었지 상흔이 남아 있어도 잊어버린 상처는 이미 상처가 아니지 가슴에 서리서리 얽힌 한이 머리에 서릿발을 만들어도 오랜 세월 기억은 짙은 어둠 속 망각의 늪으로 꼬리를 내리지 삶이란 그런 거라고 바람의 칼끝이 빰 위에서 소용돌이치며 오래오래 멈추었다 지나간 그해 겨울은 잊히지 않고 뇌리에 맺힌 옹이가 되었지.


허허(虛墟)/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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