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사랑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사랑함과 동시에 증오한다. 상대가 자신에게 온전히 소유되기를 거부하면 증오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감 때문에 증오한다.
2부의 폴 모렐이 가진 그런 불안감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빈틈없이 속한 관계였을 테니. 그러나 그런 관계를 아무리 연인이라 해도 타인에게서 찾고자 하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늘 자신의 미래 속에 어머니 모렐 부인의 존재를 그려 넣던 폴이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동생 애니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충격적이면서도 작품을 읽는 내내 겪어온 바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숙연해졌다. 그러나 모렐 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죽음의 순간에서 폴 모렐이 해방을 맞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연애를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폴 모렐의 삶이 끝난 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엄마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가슴에 묻고, 남은 인생을 향해 앞으로 걸어간다는 면에서. 어쩌면 폴에게는 축복이기까지 하다.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구속을 떨치고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삶을 선물한 어머니.
그러나 진짜 삶을 살기 위해서는그 사랑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발췌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 가운데 그 자신을 지탱해 준 유일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는 가버렸고 이 어둠 속에 뒤섞여 버렸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만져주고 그녀 옆에 자신을 두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냐, 그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도시의 황금빛 인광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주먹을 꼭 쥐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서 그 방향으로 어둠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희미하게 소음이 들리고 불빛이 타오르는 도시를 향하여 재빨리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