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서로가 가진 전에 본 적 없는 '미지의 경이로움' 에 매료되어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서로가 가진 이질성 때문에 정신없이 빠져 들었으나, 살아온 삶이 너무 달라 대화로도 메꾸어지지 않는 그 차이는 곧 경멸의 감정을 낳게 된다.
아내에게 상처를 주어 미안하면서도 자신이 상처 주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아내가 미운 남편. 가난과 추함과 조악함과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아내는 남편이 곁에 있어도 외롭다. 서로를 경멸하나 서로에게 묶여 있는 두 사람.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날 수 있는 끔찍하고도 지독한 싸움은 서로의 영혼을 생매장시킨다. 서로를 서로의 인생에서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혼이 외롭고 황폐해져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졌을 때 그 쓰라린 환멸 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아내는 아이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고, 남편은 그것을 질투한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비롯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환멸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향한 경멸의 감정은 가족 내에서 대물림 된다. 엄마와 영혼이 묶인 아이들은 아빠를 혐오하게 된다. 끊임없는 가난과 가정불화는 가족 전체의 마음에 응어리와 그늘을 지게 만든다.
1부에서 첫아들 윌리엄은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체질한다. 그리고 그 여과 행위는 연인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마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를 답습하는 것처럼. 1부가 끝날 무렵, 윌리엄의 죽음 후 모렐 부인은 자신의 분신을 잃은 듯한 지독한 비탄 속에 빠진다. 그 슬픔을 두고 함께 고통을 느끼던 폴은 자신의 영혼을 엄마에게 묶는다. 모렐 부인의 삶의 초점이 윌리엄에서 폴로 옮겨 간다. 영혼의 매듭질은 과연 미리엄과의 사랑에 눈 뜬 폴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지독하다. 진절머리 나게 지독하다는 말 외에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말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렐 부부 두 사람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둘의 결혼은 두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의 인생까지 옥죈 거나 마찬가지다. 가정 불화 및 폭력, 불안정한 애착 관계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영혼을 찢어놓은 건지 모르겠다. 작가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인 저서인데 자신이 겪어온 삶의 면면을 현미경으로 드러낸 듯한 작품. 번역투가 너무 심해서 질리는 것과 별개로, 읽는 내내 지독한 우울의 심연에 가라앉은 기분이라 2권은 당분간 읽고 싶지가 않다.
발췌
[...] 때로 삶은 한 인간을 사로잡아 그 육신을 이끌고 다니면서 그 사람의 역사를 완성하지만 그 삶은 진실로 여겨지지 않고 그의 자아는 무심하게 내버려진다.
[...] 그는 그의 모든 생각을 어머니의 마음을 통해 체질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폴이 죽었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녀에게 약간은 안도감을 주었으리라.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는 언제나 고뇌가 뒤섞여 있었다.
[...] 그들은 그녀로부터 나왔고 그들은 그녀의 일부였으며 그들의 일은 또한 그녀의 일이었다.
[...] 그녀 자신이 참고 살아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마찬가지로 견디어내기를 기대했다. 그들은 닥치는 일을 겪어내야 했다.
[...] 두 사람은 완벽한 친밀감을 느끼며 결합되었다. 모렐 부인의 삶은 이제 폴 속으로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