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저
같은 모습, 같은 언어, 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모난' 모서리를 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난 모서리를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자 파시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서리는 곧 부정성이고, 부정성은 갈등이자 고통이며, 다름이자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부정하고 눈 감는 사회는 사회 내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고통 없는 사회> 이다.
고통은 언제나 지배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에 한 사회 내 고통이 지니는 현재성과 의미는 복합적이고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찍은 고통의 낙인이 곧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전근대사회와 달리 규율사회로 지칭되는 산업사회는 학교 및 공장에서부터 고통에 무디게 하기 위한 훈련을 행한다. 노동자의 몸은 자본가가 가지는 권력이자 그의 자본을 증식시킬 본질 및 핵심이므로 노동자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그 개념 자체를 뿌리 뽑는다. 언제나 세상에 대한 낯섦(부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은 자본과 결합하여 '편하고 기분 좋은' 진통 효과를 만들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고통에 눈 감은 사회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고통과 문제가 발현되어야 고통의 변증법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 속 고통의 존재를 의식과 인지의 영역으로 언어화시켜야 한다.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언어화시키고 가시화시켜, 우리 자신을 지속적인 불편함에 노출시켜야 한다. 진보란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사회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내가 누구의 피를 밟고 덮어쓴 채로 지금 이곳에 현존하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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