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Mar 14. 2023

한병철 컬렉션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요지


투명사회

사회 시스템을 '투명' 하게 만들기 위해 눈에 띄고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동일하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버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거슬려서 제거 '당하는' 존재 = 부정성을 가진 타자) 사회 전체가 디지털 파놉티콘panopticon 화 되어서 개인은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심리정치

(Q.) 무엇이 그러한 투명성을 요구하는가?

(A.) 이윤 창출을 위해 빅 브라더Big Brother 화 된 (자본주의 기반) 신자유주의


사물의 소멸

인간은 '너' 라는 타자의 존재를 '그것' 으로 만들어 지우다 못해, 그 자리에 채워 넣은 자기 자신조차 디지털화해 지워버린다.


타자의 추방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 하고 부정성을 가진 존재(사회적 약자, 난민, 이방인 등)를 '환대' 로 맞이하자.


에로스의 종말

타자가 소멸된 세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가해한 삶을 살아온 나와 다른 존재인 타자를 환대하고 사유할 용기.


폭력의 위상학

이러한 폭력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폭력의 위상(위치)이 어떻게 개인의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했는가?


* 고대 원시 사회 = 폭력의 외부 표출이 곧 권력, 국가의 성립 이후 형벌 시스템의 형성에 따라 이러한 폭력은 곧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죄악시됨

* 사회 시스템 = (사회를 감시하는) 권력자의 힘

* 전근대사회 및 규율사회에서 시스템 = 감시자로서 기능 (벤담의 파놉티콘)


다시,

피로사회

이러한 시스템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복종주체' 라는 존재가 된 개인은 후기근대사회에선 '성과주체 혹은 이상주체' 가 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기획하고 예속시킨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기착취를 기반으로 하나 성과주체 자신은 스스로가 자유롭다 착각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과정을 "폭력의 위상이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되었다" 라고 일컫는다. 자아는 지치고 힘들어도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지 못한다. 우울을 표출하면 스스로 만든 성과주체로서 실패한 삶이고 성과를 만들라 종용하는 사회의 기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계속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우울증, 신경증에 걸린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개인을 '효율적으로' 착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근대사회 때처럼 권력을 가지고 대놓고 착취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고 반발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시스템을 형성하고 만들어진 욕망(돈, 자기계발 등)을 개인에게 은근히 주입시킨다. 개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살아온 삶이라 생각하지만 (성과주체, 이상주체) 사실은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는 성과사회 시스템 속에서 쳇바퀴 돌듯 돌며 자신을 갉아먹는 개인은 문제가 생겨도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자기 내부로 폭력을 분출해서 정신병이 생긴다. (우울증이 그중 하나)


전근대사회에서 규율사회로 변하면서 권력이 개인에게 왜 강압적으로 시킬 수 없을까, 왜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을까에 관해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인류가 왕의 대가리를 쳐낸 역사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추가 목록


고통 없는 사회

당신이 누구의 피를 덮어쓴 채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라.


정보의 지배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개념


부정성

작가의 전체 저서를 관통하는 철학

(1) 부정성이 존재해야 사회가 정반합의 변증법성에 의해 올바로 발전한다

(2) 부정성(다름, 차이)이 제거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 부정성 = 내가 결코 부인할 수도, 고칠 수도 없는 나와 다른 어떤 것

* 부정성의 부정성 = 부정성(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면역학

면역에서는 항체 형성이 중요한데, 타자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타자와 대립함으로써 항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타자가 가진 부정성을 없애버리고 긍정성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항체가 생길 수 없다. 그러면 사회가 경색(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분명 외부는 즐겁고 긍정적인 '좋아요' 가 남발되는 사회지만 안으로 곪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 신경증의 형태로)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

정(正)이 존재하려면 필히 반(反)도 존재해야 한다. 부정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반(反)을 없애버리면 긍정성이 넘쳐나게 되는데 이건 결코 좋은 사회 아니다.


타자(反, 부정성) 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아(正, 긍정성) 가 넘쳐나는 건 나르시시즘일 뿐이고 결코 건강한 상태가 아니기에. 이를 벗어나려면 부정성을 가진 타자를 존재 자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파놉티콘panopticon

규율사회에서 작동했던 벤담의 파놉티콘에서 감시자는 죄수를 볼 수 있는 반면, 죄수들은 서로서로를 볼 수 없다. 디지털 시대 이후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투명하게 노출하는 개인들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이 형성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와 다른 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투명사회로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잡초 뽑듯 그 다른 점들을 솎아내고 없앤다 (제거당하는 부정성)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시스템의 폭력 속에 스스로 잠식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