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May 14. 2023

물의 길을 따르고, 그 길 위에 선다는 것

영화 <아바타 : 물의 길(The Way of Water)>


왜 저만 이렇게 달라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몇 가지 있었으나, 그 중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던 대사는 내면의 정체성 혼란을 심하게 겪던 키리의 대사였다. 왜 저만 이렇게 다르죠. 왜 저만 이렇게 힘들죠. 나는 이번 영화가 <정체성> 을 다룬 영화라 생각하므로, 나에게 키리의 말은 사실상 영화 속 제임스 설리 가족 전체의 마음을 대변한 거나 마찬가지다. "왜 우리만 이렇게 달라요. 왜 우리만 잡종이죠. 왜 우리만 가족 전체가 괴물이죠."


무엇이 '야만' 이고, 무엇이 '잡종' 이자 '악마의 피' 인가. 진짜 나비족과 진짜 인간은 누구인가. 그 기준은 누가 설정하고 누가 실행하는 것인가. 전편과 달리 영화는 더 이상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외관을 제시함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나비족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가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제기한다. 시작부터 혈연과 무관한 가족 구성을 보여줌으로써 외관으로 구분되는 인종주의적, 더 나아가 종족주의적 정체성이 허구적 상상물임을 이야기한다.


설리 가족은 하나



개봉 후 영화는 '가족' 에 관한 영화라 홍보되었고, 영화 속에서도 "설리 가족은 하나" 라는 외침이 지속된다. 그러나 그 가족의 경계는 가변적이며 계속해서 확장된다. 물론 어디에 자리 잡든 가족이 있는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요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 집의 경계는 숲의 세계에서 물의 세계로, 나비족의 세계에서 툴쿤의 세계로, 대자연 전체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가족을 지켜야' 하는 제임스 설리는 도망치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며, 내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 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게 된다.


내 생각에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뽑아보라면, 단연 로아크와 파야칸이 손을 잡는 장면이다. 영화 속 추방자로 불리는 어린 툴쿤인 파야칸은 사실 오해가 있었음에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 번의 해명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추방당했다. 이런 파야칸의 아픔은 똑같이 무리에서 겉돈 경험이 있는 로아크만이 알 수 있었다. "난 네가 아니야." 라며 가족 내 완벽한 아들인 형에 대한 열등감으로 상처 입은 상태였던 로아크. 파야칸과의 대화를 통해 상대의 아픔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파야칸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던 알을 깰 수 있게 된다. "걔는 내 형제야." 라며 형제 중 가장 먼저 가족의 경계를 확장하게 된다. (재밌는 건, 파야칸이 무리에서 벗어났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무리의 관습을 깨고 인간을 공격하여 친구 로아크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


물의 길을 따르고,
그 길 위에 선다는 것


<아바타> 세계 속 에이와는 만물을 포용하며 판도라 세계를 아우르는 초월의식이다. "우리는 에이와 안에 살고, 에이와는 우리 안에 산다." 는 말은 중반부터 "바다는 네 주위에 있고, 네 안에 존재한다." 로 대치되며 확장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물의 길. 그 길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시작되는 길로 물은 한 존재가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 위대한 대자연의 어머니는 모든 걸 주지만, 모든 걸 앗아가며, 모든 걸 연결하면서, 모두를 품으신다. 물의 길을 따르고, 그 길 위에 선다는 것. 그것은 낯선 이방인들을 편견 없이 포용하는 대자연의 존재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다. 자기 종족 문화를 넘어선 낯선 타자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환대하고 환대받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류는 "언제나 충성을" 이라는 말과 함께 맹목적 복수를 다짐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그러나 인류는 과연 무엇에 충성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는 어쩌면 인류가 나와 다른 존재인 타자의 배제와 착취를 위한 살육에 충성을 다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반문한다. 우리가 던진 작살이 곧 우리의 목을 휘감을 것임을 경고한다.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태양 아래 따뜻한 사랑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