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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 댁에 왔습니다.

어머니 댁에만 오면, 잠이 많아집니다.

by 한량의삶

2025년 설 연휴, 저는 어머니 댁에서 명절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는 어머니와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명절 이외에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어머니댁을 꼭 방문하는데요. 거리는 버스로 한 10 정거장 남짓됩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마음의 거리도 가깝게 느껴지는데요. 어머니 댁이 정말 편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근에 어머니댁에서 잠을 잔 적은 없습니다.

폭설과 함께 시작한 설 연휴!

그런데 이번 설 연휴는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어요. 어머니댁에서 2박 3일 묵게 되었거든요. 사실 저는 어머니댁에 자주 방문하지만, 잠은 제 집에서 잡니다. 꽤 오래 지켜온 철칙 같은 건데요. 혼자 산지 오래되어 그런지, 어머니 댁 잠자리가 좀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설연휴에는 예상치 못한 동발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댁에 묵게 되었습니다.

설 연휴 폭설과 강추위로 전국 몸살...

설 연휴를 앞두고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1월 27일 월요일, 한 뉴스의 헤드라인인데요. 바로 이 폭설 때문에 저는 집에 못 가고 설연휴 2박 3일 동안 어머니댁에서 강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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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댁, 2박 3일!

어머니께서 창 밖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그냥 집에 가지 말고 연휴 동안 집에 있라고 하시더라고요. 내심 저는 그 말이 반가웠습니다. 맨날 일 핑계 대면서 바쁜 척했었는데, 이번 연휴는 좀 여유롭더라고요. 때마침 지난 주말에 한 달 동안 준비했던 토익 시험을 마치고, 바로 설연휴를 맞이한 터였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어머니 댁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 댁에서의 2박 3일은 정말 편안하고 여유로웠습니다. 우선 연휴가 길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요. 시간 여유가 생기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더불어 매 끼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에 밥도 챙겨주시고, 밥 먹으면 과일도 챙겨주셨는데요. 배 부르고 등 따뜻하니 포근한 이불속에 누우니, 세상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어렸을 때 명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명절 하면 항상 긴장, 걱정, 그리고 불안, 초조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데요. 사실 이번 설 연휴처럼 저희 가족끼리 편하고 여유롭게 명절을 보낸 지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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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싫었던 어린 시절!

저희 아버지는 1남 5녀 집안의 장남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저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요. 명절 차례를 지내고 나면, 오후부터 고모들 가족들이 릴레이로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물론 방문하는 사람들이야 명절이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 보고 인사 나누려 좋은 뜻으로 오는데요. 솔직히 저는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이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이 큰 집이라는 이유로 그 많은 친척 손님들이 오는 것도 싫었고, 손님 올 때마다 항상 긴장해서 인사드리는 것도 싫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가장 스트레스였던 건, 하루 종일 누가 올지도 모르면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극히 내향적인 성격이었는데요. 명절에는 친척들과 쉽게 어울리거나 친해지지 못해서, 그 어색함에 항상 뚝딱거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싫었던 건, 억지 대화였는데요. 고모나 고모부들이 물어보는 뻔한 질문들, 손님이 올 때마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어요. 굳이 할 말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억지로 대화하려는 모습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저에게 명절이란, 항상 긴장과 불안감을 주는 단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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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절은 쉬는 날!

그런데 10여 년 전 즈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존재 자체가 그동안 가족을 모아주는 구심점이었는데요. 그 구심점을 잃으니까 고모들도 저희 집에 방문하는 횟수가 점점 줄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셔서 차례도 안 지내시니, 친적들을 한데 모을 명분 찾기도 쉽지 않은 거죠. 결국에는 친척들이 각자 자기 가족 중심으로 명절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명절 연휴가 많이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어린 시절,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긴장하고 불안해하면서, 예의 차리며 미소 짓고, 억지 대화 이어가야 했던 그런 명절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 가족만 모여서 조금은 루즈하지만, 조용하고, 여유롭고, 편안한 명절이 있습니다. 요즘 명절을 보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어머니께서 수 십 년 고생하시던 명절지옥을 벗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계신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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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댁, 왜 잠이 많아질까요?

지난 2박 3일 어머니댁에 머물면서 무엇을 했는지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더라고요. 대부분의 시간은 먹고, 자고, 또 TV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 하나가 머리를 스쳤는데요.

어머니 집에만 오면,
왜 잠이 그렇게 많아질까요?

설 연휴 첫날은 잠자리가 어색해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그렇게 잠이 잘 오더라고요. 점심 먹고 바로 전기장판에 누워서, 3~4시간을 내리 잤습니다. 똑같은 패턴으로 3일을 반복했는데요. 어렸을 때 명절만 되면 아버지는 점심 드시고 항상 주무셨거든요.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항상 제가 아버지를 깨우곤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아버지는 명절에 왜 잠만 잘까? 궁금했는데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명절 오후엔 그냥 졸립니다. 아무 이유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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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땐, 두 손 가득 무겁게!

이래저래 어머니댁에서 게으름 피우다, 연휴가 쏜 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제 머릿속엔 먹고 잔 기억밖에 없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요. 연휴 마지막 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제 두 손에는 뭐가 많이 들려 있었어요. 명절 음식에서부터 과일, 과자, 김치, 야채, 심지어 먹다 남은 콜라도 들려있더라고요. 어머니께서 혼자 사는 아들 걱정에 바리바리 싸 주셨는데요. 고스란히 냉장고에 넣어놨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 달,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설연휴 어떻게 보내셨나요? 왁자지껄하게, 혹은 조용하게, 아니면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설 연휴 이야기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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