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중국집, 자장면 한 그릇에 행복해졌습니다.
길을 걷다 허름한 중국집 앞을 지나갑니다. 출입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자장 볶는 냄새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출입문을 열고, 그 허름한 중국집으로 들어갑니다.
간짜장 하나 주세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자리도 잡기 전에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장님의 대답을 듣고, 그제야 조용히 자리에 앉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참 낡고 오래된 중국집입니다. 한쪽 벽에는 물 빠지고 색 바랜 큰 메뉴판이 걸려있고, 테이블은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져 움푹움푹 패어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찐득하고 끈적한 느낌인데요. 하지만 저는 이런 8~90년대 감성을 좋아합니다. 요즘엔 이런 옛날 것들이 뭔가 낭만 있지 않나요?
주문한 간짜장을 기다리는 동안, 혼자 이런저런 감상에 잠깁습니다. 중국집 하면 제 머릿속에는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 오르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항상 기원에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기원은 예전에 어르신들이 모여서 바둑 두는 곳인데요. 할아버지는 매일 바둑을 두셨고, 저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는 전철역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으레 자장면을 시켜 주셨는데요. 그때는 그 자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습니다.
또 제 머릿속을 스쳐가는 추억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저희 학교는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는데요. 학교에서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까지 다 해결해야 했습니다. 점심은 급식을 먹더라도, 저녁은 친구들과 항상 학교 밖에서 해결했는데요. 분식점을 갈 때도 있고, 컵라면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항상 자장면이었고, 중국집에 가는 횟수도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싸고 양 많으면 뭐든지 다 맛있던 시기였는데요. 학교 앞 중국집 사장님이 교복 입고 온 학생들에게는 거의 반 값에 자장면을 주셨어요. 그때 당시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1,500원. 굉장히 저렴했죠. 그리고 맛도 좋아서 매일 먹어도, 다음 날 또 가고 싶은 그런 아지트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맛있었던 자장면인데... 항상 제 식탐과 식욕을 끓어오르게 했던, 그 자장면은 안타깝게도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먹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1년에 한두 번 먹을까요? 그렇게 자장면은 제 일상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제가 자장면을 자주 먹지 않게 된 때는 배달 자장면 그릇이 바뀌고 나서부터 인 것 같습니다. 옛날 자장면 그릇이 아니라, 1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자장면이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게다가 중국집에서 직접 배달하던 때와 다르게, 요즘 배달 자장면은 면이 너무 불어서 기대했던 맛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때는 짬뽕을 시키고요. 중국집에 직접 가서 먹을 때만 자장면을 시킵니다. 그리고 오늘은 자장면이 아주 많이 당기는 날이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추억에 빠져있는 동안, 자장면이 나왔는데요. 역시 가게에서 시켜 먹는 자장면은 냄새부터가 다릅니다. 갓 볶아진 간짜장의 양파 냄새가 벌써 침샘을 폭발시키고요. 그릇 한가운데 정갈히 담긴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면이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저는 배달 자장면의 맛이 매장 자장면을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쫄깃한 면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불은 면을 정말 싫어해서, 평소에도 배달 음식으로 면요리는 잘 시켜 먹지 않거든요.
그런 제가 오랜만에 면요리,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자장면을 먹습니다. 눈앞에 놓인 자장 냄새에 식욕이 치솟아서 흥분이 되는데요. 간짜장 소스를 면에 붓고 가열차게 비볐습니다. 그리고 잘 비벼진 자장면을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올리고, 한 껏 벌린 입 안에 욱여넣었습니다.
호로록, 호로록~!!
자장면은 이렇게 호로록! 소리 내며 먹어야 맛있지 않습니까? 제가 자장면을 다 먹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 32분, 사실 이 자장면이 오늘 제 첫끼입니다. 지난 저녁부터 건조하게 말라있던 제 입안이 단짠불맛과 자극적인 감칠맛에 정신 못 차리고, 침샘을 폭발시켰는데요. 역시 굶다가 먹는 첫 끼, 첫 입는 무엇인들 안 맛있겠습니까? 그 순간 저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자장면을 받자마자 바로 흡입하고 밥까지 시켜서 야무지게 비벼 먹었는데요. 마지막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폭풍 같은 전쟁을 끝낸 듯 왠지 모를 평온함이 몰려왔습니다.
자장면을 먹을 때는 먹는 행위에만 집중할 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는데요. 자장면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내려다보니, 흐뭇한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가장 배고플 시간에 배불리 먹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먹는 자장면이 정말 맛있었거든요. 예전에 친구들과 매일 즐겨 먹던 그 자장면이 생각나는 맛이었습니다. 물론 자장면은 MSG의 맛이라고 혹자는 이야기하던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msg의 맛을 좋아합니다. 특히, 자장면은 행복의 맛이죠!
되돌아보니, 저에게 자장면은 추억의 맛이 되었네요. 이제 자장면을 떠올리면, 제 인생 속 다양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여러 추억들이 생각나는데요. 그 말은 제가 젊었을 때, 언제 어디서 누구와 같이 있든, 항상 자장면과 함께였다는 의미겠지요.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에게 자장면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의 이야기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