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식물이 누래진

by 사이글

17살 때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문을 열면 곧바로 하늘이 보였고, 온도와 미세먼지 농도를 직접 느꼈다.

그 덕인지 어머니는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화분을 들이기 시작하셨다. 작은 화분에서 시작해, 내 허리에 올 정도로 높은 화분을 키우셨다.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식물이 늘어져 내 다리를 칠 때면 지지대가 놓아졌다. 항상 우리 집 막내처럼 여기며 사랑으로 키우셨다.


서울에 온 지 11년째이다. 옆집이 키우는 강아지가 훨씬 귀엽듯 생명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여유가 없던 탓이다. 서울은 많은 것을 요구하고, 쥐어주며 또 앗아가는 곳이다.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 보였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화분을 선물 받았다. 특히나 작아 다육식물이라 불렸다. 온종일 회사로 출근하니 키우기 쉬울 것이라 했다. 다육식물은 잎이나 줄기에 물기를 많이 머금은 식물이다. 그래서 봄과 여름엔 2주에 한 번, 가을과 겨울엔 3~4주에 한 번만 물을 줘도 된다. 생명력이 아주 굉장한 녀석이다.


그 해 2025년은 10년 전 반수를 하던 때와 같이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했고 일했으며 독서를 했다. 오히려 그 점이 나에 대한 자부심을 키운 것 같았다. 아침마다 흐릿한 눈으로 다육식물을 바라보았다. 매일 나의 의지대로 살지만 점점 붓는 눈과 다르게 다육식물은 멀쩡했다. '그래 너만이라도 편하게 내 방에서 쉬렴' 가끔 텔레파시를 보내기도 했다.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날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다리가 풀렸다. 수많은 자책이, 아쉬움이, 후회가 밀려왔다. 어떤 나의 부족함이 이렇게 만든 건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 사람과 잠깐의 통화가 오가고 나서 머리가 잠시 차분해졌다. 보일러가 고장 나 차가웠던 방바닥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침대에 기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그리고 나를 정리해야 했다. 그때 오른쪽 눈을 비집고 다육식물이 보였다. 활시위를 당기듯 줄기는 뒤로 누워있고, 가시가 돋은 듯 잎은 얇았다. 색깔은 누랬다.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이 다육식물의 물기였다면, 사랑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주기적인 관심이다.

관심은 사랑을 돋우게 하며, 일정 수준 떨어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관심은 그 사람과 그리고 나에게 가야 한다.


노래진 식물을 보며 사랑이 끝났구나를 알았다. 나의 관심은 누구에게 부족했는지 천천히 되돌아보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작가의 이전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