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꺼내기
-직무전문가 시야와 경영진 시야의 차이점
라틴어로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즉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어렴풋하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은 실제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확실하게 파고들어 근본 원인과 전후좌우 맥락, 나아가 전체 그림을 알아야 한다. 즉, 책 한 두 권 읽고 의사결정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체 여론을 판단해서도 안되며 자신의 논리만 믿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짓이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H사 근무할 때 HRD 기획 담당하는 부하직원이 있었다. 열 명 남짓한 부서 내 HRDer 중에 손꼽히는 똑똑이 었고, 특히 기획서를 논리 정연하게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만, 외부에서 경력 채용된 지 얼마 안 되어 회사 내 경험이 짧다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틀 잘 갖춘 보고서를 선호했던 경영진에게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경영진으로부터 “4차 산업을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HRD 방향성”이라는 지시가 떨어져 아까 그 똑똑이를 포함하여 몇 명을 TFT로 꾸려주면서 한 달 내에 기획서를 내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랬더니 1~2주간 끙끙거리며 밤샘 회의도 하고 잔업도 불사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는 둥 하더니 어느 날인가부터는 TFT 인원 통째로 교외로 출장을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뭘 하는가 알아봤더니 국내 연수원 시설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연수원 될만한 시설들, 예를 들면 교회 기도원이나 전망 좋은 강가 옆 유스호스텔 등을 둘러보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TFT팀에 중간보고를 요청하고 기획 의도를 알아보았다.
그 똑똑이 왈, 근본 원인 분석법(Root Cause Anlysis)으로 문제를 집중 연구해보니 H사의 경우 회사 내 교육시설이 부재하여 4차 산업 역군을 양성할만한 기본 조건 자체가 미흡하여 전국적으로 가성비 괜찮은 시설을 매입, 리모델링하여 연수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의 핵심 해결안으로 도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찬찬히 중간보고 시 가져온 기획서 초안을 들여다보니 취지-원인 분석-최적안 도출 등 매우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회사 전체 관점에서 조망하지도 못했고, 왜 그 숙제가 떨어졌는지 보고서의 질적 맥락도 결여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 회사의 종업원은 천 명을 조금 넘는 중견기업으로 연수원을 운영할 규모의 경제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것에 대해 토의를 시작하고 문제점을 피드백하자 그는 그가 배운 기획 논리대로 원인을 파악했을 뿐이며 자신의 논리에 하자는 없다고 강변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멤버들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난주 봐 둔 매물이 지금 당장 구매를 하면 매우 저렴하다며 리더인 나에게 한 번 같이 가서 검토해보자는 제안도 하였다. 똑똑이는 자신의 논리의 우물에 빠져 도무지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HRD 관점만 보았지 회사 전체의 재무상태나 4차 산업 흐름의 압박이 거세지는 경영환경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로 피드백하는 것보다, 임원 팀장 주례회의에 그를 배석시켜 회사 전체 시야를 키워주고, 경영진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오너 입장으로 바꿔놓고 생각하게 하였다. 결국 보고서 내용이 교육을 벗어나 다양한 각도, 즉 전략, 문화, HRM과 HRD 등 360도 입체적으로 꾸며지게 되었고 경영진의 고민을 다소나마 덜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엽적인 사고를 고집하는 직원들에게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를 가르쳐보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식의 지식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하고, 경영진 – 단위 리더 - 실무진으로 이어지는 소통과 결정의 흐름 속에 큰 맥락이 소실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모든 결정들이 조각보처럼 연결될 때 우리 모두는 진정한 ‘경영활동’에 동참한 것이고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