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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삐진 날

-공감의 조건

by 엉뚱이


몇 년 전부터 시작한 볼링은 어느새 아내의 인생 최애 스포츠가 되었다. 고교 때까지 운동선수로 성장해서 그런지 아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금방 실력이 늘었다. 에버는 200 남짓. 주변에서 나이 제한만 없었다면 프로볼러로 입문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이니 꽤 잘 치는 모양이다.


아내가 속한 볼링 동호회는 30여 명의 회원이 있다. 그런데, 동호회도 하나의 사회 구조이다 보니 별별 사건들이 다 있는 모양이다. 하루는 동호회 정기전을 마친 아내가 씩씩대며 들어왔다. 알고 보니 회원 중 누군가가 아내에게 심하게 지적질을 한 것이었다. 그 회원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나름 지역 볼링계에서는 알아주는 실력가였다.


어쨌건 아내의 섭섭함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곡차(?) 한 병을 가져와 같이 마시면서 내용을 파악해보았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가만 들어보니 그 회원이 과하게 지적질한 것도 있었지만 일부 맞는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것이다...라고 교통정리하면서 나름 합리적 의견이랍시고 아내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의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울그락불그락 하더니 나중에는 흙빛으로 변했다.


그 후 한동안 아내는 말이 없어졌다. 나는 저녁마다 아내가 좋아하는 곡차를 가지고 꼬리를 살랑대었지만, 우리의 말은 대체로 겉 말만 맴돌았고 속 말은 가슴 깊은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겨? 나는 화가 나고 속상해서 아내에게 짜증도 내고 막무가내 사과도 하였지만, 역시 요즘 젊은이들의 우스개 소리로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 아직 몰라?’ 상태였다.


속을 끓이던 나는 지난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나의 ‘의견’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공감’해주기를 요구했다는 것을.




공감은 로고스가 아니라 파토스다.


아까 장면을 돌이켜보면 나는 청자로서 그저 아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아내가 느끼는 그대로 동질의 감정으로 빠져들면 되는데, 쓸데없는 의견 정리뿐 아니라 옳고 그름의 잣대까지 들이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 이후, 나는 철두철미하게 나만의 3가지 원칙을 세우고 아내의 어떤 말에도 공감을 표시하기로 하였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당신의 편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어떤 일이라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토 안 달고), 아내의 편에서 죽일 놈 살릴 놈 같이 욕하기로 하였다.


둘째, 당신의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 그래서 아내가 우울하면 같이 우울하고, 슬프면 같이 슬프고, 분노하면 같이 분노하기로 하였다.


셋째, 당신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말.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3가지 원칙 중 제일 힘든 것이 셋째 원칙이었다.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다시 집어넣고 또 넣고... 지속적으로 듣기만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술 먹다 체할 뻔했다) 그래서, 이 원칙은 좀 더 완화시켜서 ‘완전 경청’보다는 그냥 ‘최대한 경청’으로 자가 타협하였다.


또, 실행해보니 두 번째 원칙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나의 평소 삶의 원칙이나 취향, 이데올로기, 신념, 가치관에 위배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상대방에 공감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청각에 예민한 아내가 옆 좌석의 사람들이 막 떠들고 있으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진짜 시끄러운 사람들 많네... 어쩌고’하며 가끔 큰소리로 비판하는데, 동석한 나는 거기서 맞장구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야 어차피 떠들려고 카페나 술집에 온 것인데 뭐 어쩌라고... 그리고 사실 나는 성격상 시끌벅적한 상황을 더 좋아한다.(취향)


그리고 정치성향도 좀 달라서 소위 보수 이데올로기를 가진 아내의 말에 진보지향적인 나의 고개가 섣불리 끄덕여지지가 않는 것이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맞장구 또는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소위 ‘인지부조화’ 현상이 발생하여 내 머리에 지진이 온다.


그래서 이럴 때면 언어적으로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기보다는 그냥 살인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에 완전히 빠지지는 말고 그냥 느껴주는 것만으로 완화하였다. 즉, 상대방의 감정에 폭 빠지는 empathy가 아닌 옆에서 너그러이 바라보는 sympathy로 가벼운 동조 정도만 하는 것이다.


어쨌건 이런 조그마한 공감 스킬만으로도 아내와의 사이는 다시금 좋아졌다. 특히, 첫 번째 원칙인 ‘나는 무조건 당신 편’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인 듯했다.




시중에 여러 가지 공감과 관련된 책자와 콘텐츠, 강연 미디어물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내용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뉴스를 보면 맨날 치고받고 싸우고 다툰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들은 공감하기를 ‘알면서도’ 상대방에 공감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


공감적 소통은 ‘나는 당신 편이다’라는 첫 번째 원칙, 즉 상호 신뢰를 전제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즉, 스킬보다는 마인드이고, 앎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 기실 이 원칙이 가정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큰 이슈들이 부딪힐 때마다 한 번씩은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의견에 공감한다면 반드시 브런치 구독과 라이킷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공감의 실천이다.(압박^^)



-8월의 셋째 주, 용모 생각.




참고 : 대문 일러스트는 https://cafe.naver.com/shopjirmsin/88385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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